나의 집은 어디인가? 시리아 사태, 난민 그리고 유럽. 급변하는 국제 질서 (1)

45566669 - idomeni, greece - september 24 , 2015: hundreds of immigrants are in a wait at the border between greece and fyrom waiting for the right time to continue their journey from unguarded passages

2016년 12월 25일, 지구상에는 두 가지 다른 아침이 시작되었다. 런던의 한 가정집, 미처 다 뜨지 못한 눈을 비비며 설레는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에 놓여진 선물 포장을 뜯는 아이의 표정은 행복으로 가득하다. 시리아 알레포(Aleppo) 근교의 천막이 즐비한 공터, 한 아이가 크리스마스 트리 대신 폭격으로 까맣게 탄 나무 아래에 우두커니 서 있다. 지난 주 지속되는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아이의 눈과 두 손은 텅 빈 채 아이는 홀로 새하얀 눈 속에서 추위에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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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VS 아랍의 악몽?

2011년 4월부터 시작된 시리아의 봄은 ‘내전’이라는 재앙이 되었다. UNHCR (유엔난민기구: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은 2016년 12월 22일 기준 시리아 사태에 따른 UNHCR에 등록된 시리아 난민 수를 약 4백 8십만 명으로 집계하였다. 이 중 약 10%는 UNHCR 산하 난민 캠프에 기거하고 있으며 나머지 90%는 캠프 외에 거주하고 있다. UNHCR의 2016년 중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3RP 2016 Mid-Year Report) 시리아 난민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은 2016년 5월 31일 기준 레바논 약 백만 명, 터키 약 2백 8십만 명이며 그 외 이집트, 요르단, 이라크 등에 수많은 시리아 난민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시리아는 현 바샤르 아사드 (Bashar Assad) 대통령의 부친인 하피즈 아사드 (Hafez Assad)가 1971년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후, 쿠테타 주역인 바스당의 일당 독재 사회주의 국가로 40년 넘게 통치되어 왔다. 1982년 반(反) 하피즈 아사드를 외쳤던 시리아 중부 하마시(市)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 이후 바스당 군인엘리트 계급에 의해 강압과 공포정치를 통한 독재는 절정에 이르렀었다. 그러나 2000년 7월 바샤르 아사드의 정권위임을 기점으로 상대적으로 정치 자유화 및 다원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으나 시리아에 불었던 자유의 바람은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공포정치로 회귀하였다. 2010년 겨울, 튀니지에서 시작되어 전 아랍국가를 휩쓴 아랍의 봄에도 시리아는 마치 외딴 섬처럼 고요하였으나 이는 다가올 긴 내전의 고요한 여명이었다. 2011년 3월 시리아 남부 다라(Darra) 지역 민간시위대에 대한 군인의 발포를 시작으로 2016년 현재까지 치열한 내전이 지속되고 있다.

시리아는 다민족, 다종교 국가로 1970년부터 이슬람의 소수 종파 중 하나인 알라위파 아사드 가문과 소수 순니파, 기독교 기득 세력이 중심이 되어 다스려왔다. 현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스라엘을 포함하는 지역인 ‘더 그레이트 샴 (The great Sham)’ 지역은 19세기까지 오스만 제국의 통치 아래 지역 및 종파 별로 상대적 경제 및 통치 자유를 누렸었다. 특히 알라위파는 근대 이전까지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하위계층의 소수파였으나, 1920년 시리아를 점령한 프랑스의 ‘소수파로 기존 세력인 순니파를 견제한다’는 식민정책에 따라 대규모 알라위파 청년들이 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신흥 군부세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다민족 및 다종파의 색채를 지닌 시리아 내전의 씨앗은 바로 이 식민정책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런던 동양 아프리카 대학(SOAS) 정치학과 교수인 살와 이스마일 (Salwa Islamil) 교수는 그의 저서 [Demystifying Syria, (2009, SAQI Books)]에서 시리아 권위주의 정권의 핵심은 1960년 이후 쿠테타로 새롭게 부상한 알라위파 중심의(Alawi-dominated military elite) 군부엘리트 세력과 순니파 상인(The Sunni merchants) 계급의 전략적 동맹이라고 지적했다.

현 시리아 사태에서 심화되는 무슬림 순니-쉬아 종파간 갈등은 국내적 정치 권력 갈등, 그리고 지역적 권력 갈등의 층위에서 살펴볼 수 있다. 국내 층위에서는 바샤르 현 대통령의 정부군과 반군 세력인 시리아 국민연합, 자유시리아군 그리고 IS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 지역적 층위에서는 시리아 정부군을 위시로 한 이란과 러시아, 반군을 위시로 한 사우디와 미국, 유럽의 서구국가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 시리아 정부군 편에는 러시아, 이란,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등이 참가하고 있다. 반군 편에는 무슬림 형제단과 제휴하는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시리아 국민연합과 연대한 자유시리아군을 훈련시키고 있으며, 카타르는 무슬림 형제단 세력을 지원하고 사우디아라비아는 1,239명의 사형수를 시리아 내전에 용병으로 투입할 뿐만 아니라 반군에 소형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바샤르 아사드 현 시리아 대통령과 레바논 정치 정당인 히즈볼라, 이란과의 동맹관계는 종교 교리상의 연대라기 보다는 이스라엘 및 미국을 견제하는 일종의 권력 제휴 동맹(쉬아 벨트, Shi’a Belt)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시리아 난민 문제는 단순한 인도주의 및 국제법적 시각 보다는 국제 정치학의 역학 구도로 보아야 한다.

탈냉전, 새로운 국제 질서 그리고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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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 루트- 출처: 유럽 위원회(European Commission), 2016]

냉전 종식 이후 비군사적 안보문제로 새롭게 등장한 난민문제는 인간 안보차원(Human Security)에서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주요 관심 사항이 되어왔다. 난민에 대한 정의는 시대와 당사국의 입장에 따라 각기 상이한 해석이 존재하며 난민의 지위를 결정함에 있어서는 국제적으로 완벽한 기준과 통일된 절차가 규정되어있지 않다. 다만 일반적으로 1951년 유엔총회에서 난민의 개념을 제시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the UN’s 1951 Refugee Convention, 이하 난민협약)’과 1967년 ‘난민 지위에 관한 의정서’ (Protocol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 의 내용이 국제사회에서 승인되어 각국의 국내입법상 기준이 되고 있다.

난민보호를 위해 1949년 설립된 유엔난민기구(UNHCR)는 국제법상 UN회원국들로부터 난민 보호의 임무를 위임 받아서 위임 난민(mandate refugees)을 보호하는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위임 난민은 비단 난민협약 및 의정서상 난민 정의에 부합하는 난민들뿐만 아니라, 경제 난민이나 환경 난민, 그 밖의 국내실향민 (IDP: internally displaced people)까지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난민협약 및 의정서의 법적 틀 밖에 있는 다양한 부류의 난민들을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법상 UNHCR은 위임 난민을 보호할 수 있지만 해당 난민 수용국의 수락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수락을 얻지 못한 경우에는 난민 보호활동을 수행할 수 없다. 또한 난민 수용국을 감시할 수는 있으나 난민 수용국이 특정 난민 보호 활동을 수행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상 난민의 요건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첫째,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의견 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는 자여야 하며, 둘째, 이러한 박해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공포(Well-founded fear)가 있는 자여야 하며, 셋째, 국적국 혹은 상주국 바깥에 거주하여 국적국 혹은 상주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자여야 한다. 위의 1951년 난민 협약 및 1967년 의정서에 서명한 국가들은 망명자를 박해가 우려되는 곳으로 송환하지 않는 다는 ‘르풀르망의 법칙(non –refoulemant)’에 따라 자국 영토에 발을 디딘 망명자 및 난민을 보호할 의무를 갖는다. 하지만 가장 많은 시리아 난민이 거주하고 있는 시리아 주변 국가인 터키,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 등 대부분의 중동국가들은 이 협약 및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았거나 모든 조항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국가들에 대한 난민 보호에 대한 강제적 의무는 국제법 상 적용되지 않는다.

한 예로 레바논 및 이집트의 경우 시리아 난민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아 UNHCR (유엔난민기구)의 난민 보호에 제약이 따른다. 터키의 경우 터키 EU가입을 골자로 한 EU(유럽연합과)의 협상 도구로 시리아 난민을 이용하고 있다. 터키는 자국 내 시리아 난민의 유럽 행 길목을 차단하면서 터키와 EU 간 비자 완화 문제 및 난민 수용에 따른 지원금을 받기로 협상 중 이다. 또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 (The Guardian)’의 2016년 5월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터키는 자국 내 시리아 난민을 시리아로 송환하거나, 개정된 자국 노동법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시리아 난민에게 자국에 합법적으로 일 할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위와 같이 시리아 내전 및 난민 문제는 비난 시리아 국내 문제에서 국한되지 않고, 중동 지역 및 국제적 층위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각 인접국 및 미국, 러시아 등의 국가 이권이 개입되면서 내전의 종식은 점차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 이에 발생된 대규모 난민 문제의 경우 이제는 유럽 사회의 국수주의 및 반(反) 이민자 정서를 부추기는 유럽 내 소수 극우파의 포퓰리즘의 도구로 이용되어 유럽사회 분열의 원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유럽 내 시리아 난민 문제 및 난민의 자국 수용에 따른 정치, 경제적 장, 단점에 대해 다룰 것이다.

Ahrum YOO is Arab in Seoul’s editor-in-chief. She has a MA in Politics and took a PhD course with reference to Middle East Politics from 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in London. She is specialised in Syrian, Iraqi and Lebanese affairs. Her academic interests are sectarianism, the role of political ideology and identity in contentiou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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