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단교 사태와 트럼프의 신호

분쟁의 핵이 된 걸프의 소국, 카타르

지난 6 , 걸프 지역을 비롯한 이슬람 권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도로 촉발된 카타르 단교 사태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섰으며, 여진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6 20 현재 카타르와의 외교 관계 중단을 선언한 국가는 사태를 주도한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 12개국에 이르며, 외교 관계 격하 조치는 요르단을 포함한 4개국에서 단행되었다. 반면 이슬람 내에서도 오만과 이란, 모로코 등은 이번 사태에 대해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는데, 가운데 터키와 쿠웨이트는 중재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자처하고 나선 상황이다.

이번 단교 사태의 원인에 대해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양측이 주장하는 바가 사뭇 다르다. 이슬람 권의 단교를 적극적으로 부추긴 사우디아라비아는 카타르 정부의 테러 지원, 적성국인 이란에 대한 우호적인 성향 등을 문제 삼으며 사태 해결을 위한 카타르의 진심 어린 노력이 있기 전까지는 외교 경색 상태를 유지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에 반해 카타르는 지난 5월에 있었던 카타르 국영 통신(QNA) 해킹 사건이 이번 단교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며, 테러 지원 등은 핑계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해킹으로 인해 QNA 발로 보도된 가짜 뉴스에는 타밈 하마드 사니(Tamim bin Hamad Al Thani) 카타르 국왕이 이란에 적대적인 국가들의 태도를 비판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이로 인한 갈등이 단교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양측 모두 다른 이유를 들고 있지만 각각 강변하는 내용은 비교적 최근에 벌어진 사건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는 이미 전임 카타르 국왕인 하마드 칼리파 사니(Hamad bin Khalifa Al Thani) 시절부터 긴장 관계에 접어들었으며, 특히 아랍의 봄을 기점으로 양국이 지향하는 노선이 확연히 달라지며 공공연하게 갈등을 노출시킨 있다. 그렇기 때문에 6월에 발생한 일련의 사태에 대한 배경을 꼽자면 충분히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가 예고도 없이 전격적으로 카타르와의 단교를 선언한 것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직후라는 점에서 미국의 역할과 단교 사태의 관계에 대해 고찰해 필요가 있다.

걸프의 패권국 미국, 그리고 중동 역내 정세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기존의 패권국인 영국과 프랑스를 대체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1956년에 발발한 수에즈 전쟁을 기점으로 하며, 특히 걸프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패권국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1968 영국의 철수 선언을 기점으로 한다. 그리고 미국의 대외 정책 기조에 따라 역내 상황이 부침을 거듭해왔기 때문에 이번 단교 사태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의 갈등을 읽기에 앞서 미국 정부의 입장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56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었던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하고 이스라엘 선박의 아카바 진입을 원천 봉쇄했는데, 이로부터 촉발된 수에즈 전쟁은 역내 권력 구도를 변화시킨 거대한 사건이었다. 사회주의 진영과 자유주의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냉전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소련은 각자의 손익 계산때문에 나세르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반해 기존의 패권 세력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기득권 유지를 위해 이스라엘의 편에서 전쟁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군이 시나이 반도를 점령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는 영국과 프랑스가 승리를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과 소련의 강한 압박으로 이스라엘 군이 결국 시나이 지역에서 철수함에 따라 정치적인 승리는 · 양국에 돌아가게 되었다. 사건 이후 패권국의 지위가 점차 미국으로 넘어가게 것이다.

수에즈 전쟁은 중동 역학 구도를 뒤바꾼 사건이었다. (미군 핵항모 시어도어 루즈벨트함이 수에즈 운하에 진입하는 모습) U.S. Navy photo by Photographer’s Mate Airman Javier Capella

역내 외교 환경 정치 상황은 미국의 대외 정책 변화와 함께 변곡점을 숱하게 그리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70년대 이란의 대두이다. 60년대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걸프 지역의 양두 마차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에 대해 어느 쪽이 강해지는 것을 막는 균형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영국의 걸프 지역 철수 닉슨 행정부 등장과 함께 미국은 역내 영향력을 공고히할 필요가 생김과 동시에 소련의 영향력을 차단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균형 정책을 폐기하고 당시만 해도 대표적인 친서방 국가였던 이란을 우선하는 정책을 펴게 되었다. 시기에 친이란적인 미국을 등에 업은 이란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위치한 ( 툰브, 툰브, 아부 무사) 대한 영유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했고, 현재까지도 도서 영유권 문제는 해당 지역의 뇌관으로 남아 있다.

미국의 당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학설이 분분하지만, 걸프 전쟁 역시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미국의 의중을 먼저 파악하고 일으킨 전쟁이었다. 후세인은 이란과의 전쟁을 아무런 소득 없이 마무리지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쿠웨이트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다. 후세인이 이라크쿠웨이트 국경 지대에 병력을 증강시키는 뚜렷한 군사 행위를 보이자 이에 미국 국무부는 강력한 경고 메세지를 던지면서도 편으로는 쿠웨이트에 특별히 안보를 약속한 적은 없다는 애매한 입장을 피력한 있다. 침공이 있기 1주일 후세인은 에프릴 글래스피 주이라크 미국 대사에게 다시 반응을 떠보았고, 대사의 입에서는 아랍 분쟁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걸프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트럼프의 사우디 방문, 그리고 카타르 단교 사태

이번 카타르 단교 사태에서 보여지는 미국의 태도는 걸프 전쟁 발발 직전 미국이 보여주었던 애매했던 태도와 닮은 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의 해외 순방지로 사우디아라비아를 택했으며, 트럼프의 사우디 방문을 계기로 양국 정상은 더할 나위 없는 공고한 양자 관계를 재확인하고 무기 판매 양해각서 체결, 사우디의 대미 투자 약속 서로에게 도움이 각종 선물들을 안겼다.

사우디 정부는 이에 나아가 트럼프의 사우디 방문이 종료된 직후 카타르와의 단교를 선언했고, 2 뒤에는 국왕의 친아들인 무하마드 살만 사우드(Muhammad bin Salman Al Saud) 왕위 계승 1순위로 올려놓았다. 사우디 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가 보여준 일련의 우호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밀어붙인 것으로 보인다. 외치는 물론 내치에서도 잡음을 일으킬 것이 뻔한 이러한 과감한 조치는 트럼프가 사우디 국왕인 살만 압둘아지즈(Salman bin Abdulaziz)에게 무한한 신뢰를 표하지 않았더라면 필시 불가능한 일이다.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어떤 사인을 보냈던 것일까? Official White House Photo Shealah Craighead

그런데 문제는 미국 정부가 카타르를 완전히 적으로 돌리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사우디의 지도자들이 카타르를 테러의 배후로 지목했다며 금번 사태가 본인의 업적임과 동시에 테러 척결의 시금석이 것이라고 열심히 광고하고 있지만, 정부 주요 각료들의 움직임은 사뭇 다르다. 매티스 국방장관은 트럼프의 사우디 방문에 앞서 지난 4 카타르를 방문한 자리에서 카타르의 전략적 중요성과 양국 관계의 공고함을 강조한 있으며, 카타르 단교 사태로 시끄러운 와중에도 카타르와의 F15 구매계약을 체결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카타르 우데이드의 공군 기지는 물론 미군 중부사령부의 철군 움직임도 없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역시 이번 사태에 대해 트럼프와는 다소 결이 다른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과 국무부, 국방부가 서로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향후 걸프 정세를 완전히 뒤바꿔 놓을 있는 사우디 조치들이 과연 트럼프의 제스처를 지나치게 우호적으로 해석하여 청신호라고 받아들인 데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트럼프 행정부가 의도적으로 계획한 전략 속에서 사우디가 체스 게임을 시작한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다만 가지 확실한 것은 이번 사태의 시발점은 트럼프의 사우디 방문이며, 사태의 해결 역시 미국의 의중에 따라 방향이 결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Won-gu Kang is Arab in Seoul’s editor. He is in a master and PhD integrated course in the Middle Eastern Departement, Graduate School of Int’l and Area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He wants to be a scholar who specialized in Maghrebi politics especially Moroccan modern period and its Makhzen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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