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건축, 거대한 전광판 – 우마위야 왕조 칼리프 부자(父子)의 꿈

다마스커스 모스크 내부 중정과 파사드 모습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는 706년에서 715년 사이에 건설한 대모스크(Great Mosque, 혹은 우마위야 모스크(Umayyad Mosuque)라고도 한다.)가 시내 중심에 우뚝 서있다. 현재는 무슬림의 성소이자 예배를 위해 사용하는 공간이지만, 1세기 무렵 로마인은 같은 자리에 제우스 신전(Temple of Jupiter)을 건설하였고, 4세기 후반에 이르자, 그리스도교인이었던 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I)는 신전을 부수고 세례요한교회(Cathedral of John the Babtist)를 세웠다. 이후 무슬림이 다마스커스를 점령한 후, 우마위야 왕조의 여섯 번째 칼리프이자, 아버지인 압드 알 말릭(Abd al Malik)과 왕조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알 왈리드(Al Walid)는 같은 장소에 모스크를 건설하였다.

다마스커스 모스크 전경 (출처:wikipedia)

아버지인 압드 알 말릭은 예루살렘에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을 건설하였고, 아들인 알 왈리드는 왕조의 수도인 다마스커스, 그것도 지난 시절 다양한 종교와 문화의 성소가 있던 그 자리 위에 모스크를 건축하였다. 이들 부자(父子)는 왜 대를 이어가며 대형 건축 사업을 진행했던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당시의 정치 상황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마위야 왕조의 문을 연 무와위야 1세(Muwawiya I)는 선출을 통해 칼리프를 선정하던 이전의 전통을 깨고, 아들인 야지드 1세(Yazid I)를 후계자로 지목하며 이슬람 세계의 첫 번째 세습 왕조의 문을 열었다. 왕조의 수도는 다마스커스로 이전하였지만,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주바이르(Zubayr)가문은 끊임없이 우마위야 왕조의 정통성에 도전하며 군사 도발을 지속하였다. 제4대 정통 칼리프였던 알리(Ali)와 벌인 십핀전투(The Battle of Siffin)과정에서 발생한 카와리지(나간자들, Khawarij)도 제 5대 우마위야 왕조 칼리프인 압드 알 말릭 치세에 이르러서야 우마위야 왕조에 귀속되었다. 특히 야지드1세 통치기 때 발생한 카르발라 참극(The Tragedy of Karbala)를 계기로 이슬람 세계는 순니파와 시아파로 나뉘기 시작하였다. 이 후, 호라산(Khorasan) 지역을 중심으로 압바스(Abbas) 가문 세력이 시아파와 결탁하며 우마위야 왕조의 정통성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반항하였다.

우마위야 왕조 가계도

이처럼 복잡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우마위야 왕조의 칼리프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신실함을 증명하고, 이를 치세에 적용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그 일환으로 무와위야 1세(Muwawiya I)부터 성소 건설을 위한 작업을 시작하였고, 압드 알 말릭(Abd al Malik)은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을, 알 왈리드(Al walid)는 수도 한복판, 그리스·로마 문명과 그리스도교의 성소가 있던 그 자리에 대모스크를 건축하였다. 건축물에 새긴 다양한 명문 장식은 이슬람이 강조하고 있고, 이슬람 사상의 가장 핵심 중 하나라 꼽히는 알라의 유일신성이나 예수의 인성에 대해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이를 강조한다. 또한 압드 알 말릭은 왕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던 사산조 페르시아의 금화를 대신해, 꾸란(Quran)의 구절과 알라(Allah)의 이름을 새긴 동전을 처음으로 만들어 보급하였다. 왕조의 공식 문서에는 ‘알라의 종’, ‘믿음의 수호자’과 같이 종교적 색채가 짙은 문구를 자신들의 호칭 앞에 덧붙이기도 하였으며, 이는 거리 표지석에도 동일하게 새겨졌다.

출처 : MWNF

출처: british museum website

우마위야 왕조의 칼리프들은 세간 사람들이 예언자 무함마드의 순나(Sunnah)를 따르지 않고, 세습왕조를 택하고, 비잔틴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행정 체계를 수용한 자신들의 종교적 정통성을 비판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이들 칼리프가 진정 얼마나 종교적으로 신실한 인물들이었는지는 평가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들이 추진한 다양한 행보를 토대로 이슬람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현존하는 다양한 건축을 비롯한 수없이 많은 예술 작품은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특히 건축은 그 시대의 모든 것을 응축해 놓은 거대한 전광판과 같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각종 매체와 기기를 통하여 셀 수 없이 많은 홍보 자료를 접하며 살아간다. 현재의 우리에게 너무나 쉬운 광고와 선전이 700년대를 살아가던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였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면, 누구보다 무슬림으로서의 종교 정체성을 강조하고, 자신들의 왕조가 이슬람 세계를 잇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우마위야 왕조의 두 칼리프 부자(父子)의 건축을 향한 집념과 꿈을 이해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마위야 왕조가 점령한 지역 (출처 : wikipedia)
Yi SOO Jeong is a lecturer of Korea Army Academy at Yeongcheon, She has MA in Anthropology and PhD in Middle Eastern & African Studies from the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She is specialized in Islamic studies and Islamic Ar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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