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즘, 이슬람 국가와 샤리아 – 그들은 왜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쳤을까?

지난 알아랍인서울 -‘테러리즘의 진화론-반체제 무장단체에서 외로운 늑대까지’에서는 테러의 정의와 행위자, 그리고 중동 테러리즘의 기원을 알아보았다. 끊임없는 무장 소요사태, 부패한 정부와 내전, 이에 따른 피폐한 경제, 개인의 분노 및 야망 표출 이라는 테러리즘 행위의 정치, 경제 및 사회적 요인을 살펴보았다. 무고한 생명을 담보로 하는 테러는 단순히 몸을 움직여 하는 행동(Behavior)이 아닌 명백한 주체적 의지가 담긴 행위(Act)이다. 정치적 행위는 정치적 실천(Political practice)과 정치적 사상(Political idea 또는 ideology)으로 구성된다. 이전 글에서 중동 테러리즘 정치적 실천의 역사적 변모과정을 살펴보았다면 본 글에서는 중동 테러리즘의 정치적 사상의 토대를 살펴볼 것이다.

‘알라후 아크바르 (Allahu Akbar)’, ‘신은 위대하시다’ 라는 뜻을 가진 아랍어다. 이라크 국기에도 쓰여져 있는 이 말은 예배 외에도 무슬림들이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관용구다. 그러나 감탄과 찬양의 표현인 ‘알라후 아크바르’는 어떤 이들에게는 엄청난 공포로 다가온다. 많은 수의 무슬림 테러리스트가 자살폭탄테러를 하기 직전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치는데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했던 미군에게는 이 말이 가장 큰 공포였다. 왜 당시 테러리스트들은 자국 영토를 침범 한 외국 군인에게 ‘이라크 독립 만세’도 아닌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쳤을까?

이슬람 국가 그리고 샤리아

이슬람의 아랍어 뜻은 ‘복종’, 즉 이슬람 신자인 무슬림은 신의 뜻에 따른 정의로운 삶을 현세에서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신의 뜻은 곧 삶과 연계된 법으로서 경전인 ‘꾸란’과 선지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하디스’에 근거하여 이슬람법으로 실현된다. 이슬람법은 ‘샤리아(아랍어로는 ‘길’이란 뜻)’라고 불리는데, 샤리아는 이슬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샤리아 법원에는 위에 언급한 ‘꾸란’과 ‘하디스’, 그리고 ‘끼야스(Qiyas, 아랍어로 ‘유추’라는 뜻)’ 그리고 ‘이즈마아(Ijmaa`, 아랍어로 ‘합의’라는 뜻)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이슬람에서 원칙상 성직자는 없는 것이 정설이나 이는 각 종파에 따라 다르다. 시아파에서는 종교적 권위자들이 보통 성직자로 통칭된다. 이와는 달리 수니파에서는 이슬람법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이슬람 법학자를 종교적 권위자로 인정하며 이들을 울라마(Ulama)라고 부른다.

이슬람의 역사는 즉 샤리아 발전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7세기에 시작되어 약 1400년동안 이슬람은 여러 제국의 모습으로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되어 스페인 남부에서 중앙아시아까지 빠르게 확장되었었다. 부족 연합체에서 국가, 그리고 제국의 모습으로 단시간 안에 변모 하면서 국가 운영에 관한 법의 수요가 높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기존 4대 샤리아 법원(꾸란, 하디스, 끼야스, 이즈마아)만 으로는 그 수요를 충족할 수 없었다. 또한 꾸란과 하디스에 구체적인 ‘국가’의 개념이나’국가’ 운영 지침 등이 나와있지 않기에 기존 법원을 바탕으로 법학자들이 실정에 맡게 해석해 나아가면서 법의 폭과 깊이가 넓어졌다. 즉, 이슬람 국가의 발전은 즉 샤리아 그 자체, 이슬람 법학 발전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부패한 통치자는 내가 바꾼다-이슬람 급진사상의 기원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면 군주도 바꿀 수 있다는 맹자의 역성 혁명 사상은 고대 중국 정치철학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상 중 하나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가 정치사상의 르네상스였던 것 처럼 국가의 안정성과 정당성이 흔들릴 때 새로운 정치사상의 등장한다. 이슬람 세계사에서 맹자와 비슷하게 역성 혁명, 즉 부패한 통치자는 신의 손이 아닌 백성의 손으로 처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급진파가 대두 하게 된다. 이슬람 역성 혁명의 토대는 13세기 이슬람 법학자 이븐 타이미야(Ibn Taymiyya)에 의해 세워졌으며 이는 향후 기존 정권에 대항하는 반 정권 급진이슬람운동 족보의 시초가 된다.

7세기 이후 단기간 안에 대제국을 운영하게 된 이슬람 제국의 샤리아 발전 역사에서 선례를 그대로 따르는 ‘타끌리드(Taqlid, 아랍어로 ‘전통’이란 뜻)’ 와 주체적 이성을 가지고 독자적 해석을 하는 ‘이즈티하드(Ijtihad, 독자적 추론)’의 경쟁구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기존 법해석의 모방 및 비판없는 습득을 주장하는 타끌리드와 개인의 주체적 해석을 강조하는 이즈티하드 사이의 이슬람 법해석 방법론에 관한 논쟁 속에서 이슬람 급진사상의 토대가 발전한다. 특히 중동 테러리즘 사상 근원으로 여겨지는 ‘카와지리파’와 13세기 학자인 이븐 타이미야의 정치사상은 이즈티하드에 근거한다. 특히 이븐 타이미야는 당시 만연했던 타끌리드의 ‘운명론’을 비판하며 주체적인 이슬람 정의 실천을 주장하였고 이와 관련하여 만일 통치자가 샤리아를 어기거나 이슬람 정의에 어긋나는 모습을 보이면 과감히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타인이 이슬람 정의, 그리고 샤리아에 어긋난 모습을 보였을 때 신이 아닌 인간이 정치적 행위로 개입하여 징벌할 수 있다는 논리는 현재까지 급진이슬람 사상의 정치 행위의 정당성을 부여해 주고 있다.

이븐 타이미야의 급진 사상은 이후 마우두디, 하산 알 반나, 사이드 꾸뜹 등 여러 이슬람 급진 사상가 및 단체에 의해 적용되고 발전된다. 특히 근대 이슬람 사회에서 형성된 모든 담론들은 식민지배의 상처를 극복하고 이슬람 사회를 재건하는 데 주안을 두었다. 이에 자말 알-딘 아프가니와 무함마드 압두 등 이슬람 법학자들은 서구 사상을 도입한 이슬람 개혁을 주장하기도 했다. 기존 이슬람 법학자들의 이즈티하드보다 전통에 안주하는 안일함과 소극적 태도, 미신을 초래했던 수피즘의 의례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한 세기가 넘는 식민 지배를 통한 전통생활 양식의 파괴, 독립 후 등장한 부패한 권위정권의 압제 속에서 고통받은 많은 무슬림들은 이러한 변화가 심화될 수록 그에 대한 반발로 전통적 상징들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이후 서구 사상 도입을 통한 이슬람 개혁은 소리 없이 묻히고 전통으로의 회귀와 종교성을 강조하며 독자적 추론이 아닌 꾸란의 필요한 용어만 선택적으로 발췌하여 배타적으로 해석하는 이슬람 극단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출처 : VOA

왜곡된 황금의 시대, 자힐리야의 정치학

2014년 6월 29일, 다에쉬(아랍어로 Daesh, Islamic State of Iraq and al-Sham)는 이슬람 국가 (Islamic State)건국을 공식적으로 천명한다. 초기 칼리파 시대(초기 이슬람 시대)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이들은 꾸란에 나온대로 이슬람 국가를 건립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꾸란 및 하디스 어디에도 ‘이슬람 국가(the Islamic State)’ 형태는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다. 7세기 아라비아 반도에서 발현되어 8세기 현 모로코부터 이란 지역까지 대제국을 건설한 초기 이슬람 세계에서 ‘이슬람’은 통치자의 정권을 정당화하는 유용한 수단이였을 뿐 샤리아를 그대로 적용하는 이상적 ‘이슬람 국가’는 아니였다. 이와 반대로 근대 ‘이슬람’은 부패한 정부나 서구 이권세력 개입에 저항하는 하나의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슬람 국가(아랍어로 Din wa Dawla)’ 라는 개념은 근대의 산물로 오스만 제국 시절 부터 시작되어 반정권 행위를 정당화 하기 위한 이슬람 급진사상가 중 하나인 마우두디, 무슬림 형제단 등에 의해 절충적으로 사용되었다. 즉, 과거에는 정치가 이슬람을 이용했다면 현재는 정치가 이슬람을 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에쉬는 다른 이슬람 극단주의자 (Radical Islamist)들과 마찬가지로 본인들의 입맛에 맞고 폭력 행동을 정당화 하는 용어 및 구절만 발췌하여 사용한다. 용어 발췌과정은 매우 선별적이며 편집을 통해 새로운 해석을 만들기도 한다. 일종의 ‘신성한 단어’ 들을 계속 반복하며 ‘구원’을 암시하고 이슬람 초기 시대(4대 칼리프 시대)를 ‘황금 시대’로 설정하여 돌아가야 할, 혹은 다시 세워야 할 이상향으로 강조한다. 이 황금시대와 비교하며 지금 현 시대를 ‘무지의 시대(자힐리야, Jahiliya)’로 명명한 뒤 개혁 및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한다. 현재의 저발전과 부패, 폭력은 모두 ‘황금의 시대’의 규율을 지키지 않아 낳은 결과이며 이에 ‘자힐리야’라고 부를 수 있다. 현 정권이 ‘자힐리야’로 규정된 이상 이슬람 테두리 안에서 타파되야 할 대상으로 인정된다. 이 논리를 근거삼아 다에쉬는 정권 및 기득세력에 저항하며 이에 수반되는 폭력 행위를 ‘이슬람’의 이름으로 정당화 한다.

위에서 살펴본 것 같이 다에쉬의 이슬람 국가 건립에 대한 정당성은 찾기 힘들다. 이슬람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샤리아를 그대로 적용했다고 주장하지만 필요에 따른 용어 발췌에 그친 일종의 억지 조각보일 뿐 논리적으로 타당한 짜임새가 보이지 않는다. 이슬람 자체에서 이슬람 국가 형태에 관한 이슬람 법적 근거 및 언급은 없으며 이는 개인의 필요에 따른 자의적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는 부패되고 타도해야 할 세계이며 결국 겪어보지 않은 과거의 한 시대를 이상화 하면서 다에쉬는 자체의 무력 행위를 정당화 한다. ‘신은 위대하시다’, 그들이 외치는 ‘알라후 아크바르’는 더이상 신을 찬양하는 말이 아닌 자신들의 욕망과 분노를 정당화 하려는 정치적 선전에 그칠 뿐이다.

Ahrum YOO is Arab in Seoul’s editor-in-chief. She has a MA in Politics and took a PhD course with reference to Middle East Politics from 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in London. She is specialised in Syrian, Iraqi and Lebanese affairs. Her academic interests are sectarianism, the role of political ideology and identity in contentiou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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