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GCC 국가들은 고정환율제도를 고집하는가?

5993967 - close up shot of saudi arabia money and map.

 

2014년 이후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면서 천연자원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신흥국 중에 고정환율제도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2015년에는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이, 2016년에는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가 고정환율제도를 포기하였다. 그리고 중동의 대표적인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외화 보유액이 급감하면서 더 이상 고정환율제도 중 하나인 달러 페그(peg)제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었다. 이를 노린 투기 세력이 외환선물시장에서 사우디 리얄화의 가치하락에 베팅하면서 2016년 1월 8일에는 12개월물 리얄화 선물환이 달러당 3.853리얄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사우디 중앙은행은 달러 페그제를 고수할 것이라고 밝혔고 실제로 환율방어를 위해 선물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2015년에만 1,000억 달러 이상의 외화 보유액을 사용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2017년 6월에는 카타르의 타밈 국왕이 이란 및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했다는 카타르 국영방송의 보도를 빌미로 사우디아라비아, UAE, 바레인, 이집트가 단교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카타르와 다른 주요 중동 국가와의 외교 관계도 악화되자 선물시장에서 카타르 리얄화가 급등하였다. 카타르 중앙은행은 이에 달러 페그제를 방어하기 위해 외화 보유액과 국부펀드를 즉각 유동화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실제로 막대한 외화자산을 바탕으로 환율 방어에 나서자 카타르 리얄화는 다시 안정을 되찾고 있다. 이처럼 GCC 국가 중 쿠웨이트를 제외한 나머지 5개국(사우디아라비아, UAE, 카타르, 오만, 바레인)은 달러 페그제를 고수하고 있다. 그 외에도 석유 및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많은 국가가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2016년 기준 188개 IMF 회원국 중 하드 및 소프트 페그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52.6%이며, 특히 천연자원 중심의 신흥국 중에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는 국가 비중은 74.0%로 더욱 높게 나타난다. 본고에서는 GCC 국가들을 비롯한 많은 천연자원 수출국이 달러 페그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살펴보고 향후 변동환율제로의 변화 가능성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왜 고정환율제도인가?

 환율이란 두 나라의 화폐간 교환 비율이라고 할 수 있다. 환율제도는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크게 변동환율제도, 관리변동환율제도, 고정환율제도로 나뉜다. 그리고 환율은 제도에 따라 각기 다르게 결정된다. 변동환율제도 하에서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관리변동환율제도에서 장기 환율은 외환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지만, 단기 환율은 급등락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조정된다. 마지막으로 고정환율제도는 특정 통화에 자국 화폐의 교환비를 고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정환율제도 중에서도 GCC 국가들은 달러 페그제를 사용하고 있다. 달러 페그제는 달러와 자국 화폐의 교환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고정환율제도는 나름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장점을 살펴보면, 고정환율제도는 환율 급변에 따른 경제적 영향을 완화할 수 있다. 환율의 급격한 상승이나 하락은 교역과 투자에 악영향을 미친다. 기업이 수출할 때 수출하려는 국가의 환율 변동이 크다면 그만큼의 리스크도 높아진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각종 헤지(hedge)가 필요하며 이는 수출 기업의 비용도 증가시킨다. 반면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와 교역 및 투자를 할 때 그러한 부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 금융 및 외환시장이 발달하지 못한 신흥국이 안정적인 환율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경우 고정환율제도를 선택하여 중앙은행의 신뢰도를 높일 수도 있다.

반면 고정환율제도는 다음과 같은 단점이 있다. 고정환율제도 중 하나인 달러 페그제를 유지하는 국가는 달러 발행국인 미국의 기준금리를 추종해야만 한다. 이것은 달러 페그제 시행 시 환율 유지 외에 다른 거시정책의 수단으로 기준금리를 조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미국과 달러 페그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간 경기 변동이 유사할 때는 문제가 없으나 미국의 경기가 팽창할 때 달러 페그제를 운용하는 국가의 경기가 위축된다면, 이는 해당국의 경기 변동 진폭을 확대하기도 한다. 그리고 경상수지 적자 시 환율이 오르지 않아 이에 따른 수출 부진이 지속되어 만성적인 적자를 유지할 수 있다. 또한 급격한 국제수지 변동에 대비하기 위해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는 국가는 외화보유액을 적정 규모로 보유해야만 한다. 그 외에도 외화 보유액이 감소할 경우 국제 투기세력의 공격대상이 되기 쉽다는 단점도 있다.

GCC, 달러페그제 고수의 경제적, 정치적 동기

GCC 국가들이 이와 같은 특성을 가진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외화 보유액을 쓰는 이유를 경제적인 측면과 정치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많은 전문가는 GCC 국가들이 달러 페그제를 유지하는 이유로 석유와 천연가스가 달러로 거래되어 정부의 재정 수입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든다. GCC 국가들의 수출과 정부 재정 수입에서 석유 및 천연가스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천연자원의 가격 변동은 경상수지 및 재정수지에 큰 영향을 준다. 천연자원 수출 중심의 국가에서 정부는 효율적인 재정 운용을 위해 미래 재정 수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으며 이를 목적으로 자국 화폐를 달러에 고정한다는 의견이다.

또 다른 경제적 이유로는 자원부국의 경우 변동환율제를 운용할 유인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변동환율제의 장점은 자국의 경기 악화로 환율이 상승하여 화폐 가치가 하락할 경우 이는 수출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수출량이 다시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업의 실적 향상으로 연결되는 등 선순환 과정에서 경기 회복으로 이어진다. 반면 GCC 국가들에서 UAE를 제외하고 수출에서 비석유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변동환율제도를 도입하더라도 기업의 수출 증대 효과가 크지 않다. 다시 말해 변동환율제도의 장점이 이들 국가에서는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정치적인 이유는 왕권의 안정성을 손상하지 않기 위함이다. 고정환율제도가 변동환율제도로 바뀌는 것은 주로 해당국이 더 이상 환율방어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국제수지위기에 대한 가능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장의 판단이 확산되면 외화자산이 더욱 빠르게 이탈하고 투기세력의 고정환율제도 포기에 대한 베팅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때 대외지급을 위한 외화자산이 고갈되면 결국 고정환율제도를 포기하고 자국 화폐를 평가절하할 수밖에 없다. 앞에서 국제 유가 하락 이후 고정환율제도에서 변동환율제도로 변경한 국가들이 대부분 그러한 사례이다.

그리고 이에 따른 영향을 정부와 민간 부문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원유를 주로 수출하는 국가의 정부는 원유 수출 대금을 달러로 받고 자국에 사용하는 재정은 자국 화폐로 지출하게 되는데, 기존과 동일한 원유 수출을 통한 재정 수입이 있다고 가정하면 변동환율제도 도입 이후 기존보다 상승한 환율로 인해 정부의 재정 수입이 늘어나게 된다. 반면 국민은 큰 고통이 따를 가능성이 크다. 고정환율제도 하에서 산유국은 고유가 시기에 막대한 외화자산을 축적하여 균형점보다 낮은 수준의(높은 가치의) 환율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은 국민의 항상 소득을 증가시켜 구매력을 높이는 효과를 낸다. 그런데 변동환율제를 적용하여 환율이 급등하게 되면 이는 높은 인플레이션과 실질임금 감소로 연결된다. 기존과 같은 금액의 돈을 벌더라도 구매력은 이전보다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GCC 국가들에서 이것은 단순히 국민의 소득 수준이 악화되는 문제가 아니다. 중동의 전통적인 부족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계약 관계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볼 수 있다. GCC 국가들을 포함한 아랍 민족은 전통적으로 부족주의 문화가 강하게 나타난다. 부족장(셰이크, Sheikh)은 부족원의 번영과 안위를 책임지는 대가로 군사력과 부족원의 복종을 얻는 일종의 계약관계가 형성되어 왔다. GCC 국가들에서 부족주의는 왕권 유지와 석유에 대한 이권을 정부가 독점하는 것을 국민이 허용한 대가로 정부는 자국민에게 높은 수준의 사회 복지, 각종 보조금 지급 및 근로 여건이 좋은 공공 부문 취업 기회 보장 등을 약속하는 계약관계로 발전하였다. 그런데 안정적인 환율제도 아래 높은 수준의 임금을 유지하다가 변동환율제로 바꾸게 되면 이는 통치자의 의무인 국민에 대한 경제적 번영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으로 사회계약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변동환율제 이행 과정에서 경제적 충격이 발생하면 이는 왕권의 약화로 연결되는 정치적 문제로, 민주주의 국가에서보다 왕정국가에서 그 여파가 더욱 크게 나타날 수 있다. 변동환율제를 도입하면 정부의 재정 운용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더라도 이것을 상쇄하는 더욱 큰 정치적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GCC 정부들은 환율제도 변화로 발생할 정치적 충격의 의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측면도 있다고 할 수 있다.

 향후 전망

GCC 국가들이 단기간 내에 고정환율제도 포기할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상당히 낮아 보인다. 이들은 현재 막대한 규모의 외화 보유액 및 국부펀드를 보유하고 있어 향후 원유 및 천연가스가 낮은 가격을 유지하더라도 몇 년은 버틸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GCC 국가들은 고정환율제를 계속해서 고수할 수만은 없다. 석유 및 천연가스 수출 비중이 줄어들고 산업다각화가 진척되면 점진적인 변동환율제도로의 이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즉, GCC 국가에서 민간 부문 및 비석유 부문의 수출 비중이 증가하여 해당 부문에 종사하는 국민이 늘어나게 되면 사회계약의 관점에서도 변동환율제도가 국민의 후생 증가에 적합한 제도가 되기 때문에 점진적인 제도 변화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금융시장이 발달하고 경제구조가 고도화될수록, 위기에 대응 가능한 정부의 능력이 있다면 변동환율제로의 변화는 필요한 것이다.

SON Sung Hyun is a senior researcher of the Middle East and Africa team at the Korea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 Policy (KIEP). His research areas have been economic development of Middle Eastern Countries and Islamic Finance. His recent publications are on ‘Electricity Industrial Policies in the Middle East and their Implications for Korean Companies’ and ‘Lower oil prices and economic cooperation between Korea and the Middle East’. He holds Master’s degree in Economics from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답글 남기기

*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