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족의 미래는? (1)

쿠르디스탄의 탄생? 독립 혹은 새로운 분쟁의 씨앗?

9월 25일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가 강행한 쿠르드 분리-독립 국민투표에서 약 92.75% 압도적인 찬성표가 나왔다. 공항, 송유관 폐쇄, 국경지역 군사훈련 등 이라크, 터키 주변국의 강한 반대에도 강행된 쿠르드분리-독립 국민투표로 중동 지역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레바논 미들이스트항공, 이집트항공, 터키항공 등도 이라크 중앙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29일 밤부터 이라크 쿠르드자치지역을 오가는 노선을 일시 중단키로 했다. 하이데르 알-아바디(Haider Al-Abadi)이라크 총리는 27일 “이번 국민투표는 이라크 헌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법적 효력이 없으며 투표 결과를 놓고 쿠르드자치정부와 협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또한 이라크 중앙정부는 KRG에게 이라크 최대 산유지 중 하나인 키르쿠크 지역의 통제권 반환을 요구 하였다. 이라크 의회는 KRG와 관할권 분쟁이 있는 디얄라(Diyala), 니네베(Nineve) 주 일부 지역에 군대를 기동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면서 통제권을 회수하라고 촉구했다.

쿠르드족은 누구인가?

쿠르드족은 나라가 없는 최대 규모의 단일 민족 중 하나로 약 2500만에서 3000만의 인구가 터키, 이란, 시리아, 이라크 그리고 아르메니아에 떨어져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리안족 이란계 백인인 반유목민족이였던 쿠르드족은 기원전 3000년 경 남러시아에서 아나톨리아 지방으로 이동하여 현 터키 동남부, 이라크 북부, 이란 동부 및 시리아 동부를 포함한 산악 지역에 정착하였다. 셈족인 아랍어와는 다른 인도-유럽어족의 쿠르드어를 사용하는 쿠르드족은 고대 수메르 문서에서 부터 언급된다. 메데스(Medes), 구티(Guti)족의 후손으로 여겨지며 조로아스터교에서 8세기경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쿠르드족은 고유 언어와 풍습을 가지고 있으나 영국, 터키, 이란 등 외세에 의한 분열과 쿠르드족 자체 내부분열로 현재까지 통합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쿠르드인의 다수가 이슬람 순니파이며 쿠르드인이 사는 지역, 국가를 쿠르디스탄(Kurdistan)이라고 부른다.

쿠르드족의 거주지역 (출처 :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민족 국가(nation-state) 등장, 민족의 재탄생

 한민족, 대한민국의 근본 가치로 여겨지는 단일 민족이란 그 개념은 과연 언제 부터 시작된 것일까? 2017년 9월 스페인에서는 카탈루냐 독립을 외치는 주민의 시위가 바르셀로나 거리를 가득 채웠다. 팔레스타인, 신장 위구르, 동티모르,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 등 현재 세계 뉴스에는 각 종 민족 관련 분쟁이 진행중이다. 많은 사회과학자들은 민족이란 자의적인 것이며 근대의 산물이라고 본다.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민족’이란 내부의 모든 구성원을 결코 만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하나의 집단에 대한 관념을 전달하기 위해 재창조 된 ‘상상의 공동체 (Imagined Community)’라 칭했다. 한 국가가 ‘민족’이란 개념 아래 합법적 공동체로 인정된 것은 근대 이후이다. 주권과 불간섭 원칙을 정당화한 베스트팔렌 체제의 방식을 넘어, 18세기 이후 민족주의는 국가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는 도덕적 원칙 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혈연, 혹은 문화 및 언어, 공통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통합된 ‘민족’이란 공동체가 세계 정치 무대에서 활발히 논의 된 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였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제국주의 구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1918년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은 민족 자결주의를 강조하며 제국주의 세력의 식민지였던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의 ‘독립’ 운동에 불을 지핀다. ‘독립’이란 단어 아래 ‘민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공유된 역사 및 문화, 언어에 기반한 ‘공동체’들이 ‘독립 국가’를 주창하게 된다. 비단 미국 뿐 아니라 1차 세계 대전 동안 영국, 프랑스를 위시로 한 제국주의 세력은 중동 지역의 오스만 제국 세력 약화를 위해 피지배인 이였던 쿠르드인, 아랍인, 아르메니아 인 등에게 ‘독립 국가 건설’을 약속하며 민족주의를 부추기기도 하였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 탈냉전과 권위주의 국가의 몰락으로 보스니아 내전 등 민족 분쟁이 국제사회에서 첨예하게 증가되었다. 이와같이 민족주의는 지난 2세기 동안 국가들의 체제를 이루는 도덕적, 규범적 기초였으며 분리와 영토에 대한 요구를 정당화하는 합리적 도구로 이용되었다.

이라크 쿠르드

중세 부터 아랍인의 지배를 받은 쿠르드족은 16세기 부터 오스만 제국에게 정복 되었으나 17세기 오스만-사파비 (Ottoman-Safavi) 왕조 간의 조약에 따라 양국으로 분할되었다. 1차 세계 대전 동안 오스만 제국을 와해시키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연합국은 쿠르드족에게 독립국가를 약속 하며 쿠르드족의 지원을 약속한 1920년 세브르조약(Treaty of Sevres)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전통적 쿠르드지역인 모술과 키르쿠크에서 유전이 발견 되자 영국은 1923년 쿠르드족에 대한 터키 지배를 인정하는 로잔조약(Treaty of Lausanne)을 맺어 쿠르드족을 배신하고 모술(Mosul), 키르쿠크(Kirkuk) 지역을 당시 영국 영향 하에 있던 이라크로 편입하였다. 이 후 이라크 북부 지역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은 자치권 보장, 쿠르드어 사용, 키르쿠크 유전 지대 국경 문제 등으로 이라크 중앙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끊임없는 독립운동을 이어왔다. 1991년 걸프전 이후 이라크 쿠르드족은 아르빌(Irbil), 술레마니아(Sulemaniya), 모술 등을 포함한 이라크 북부지역을 자치적으로 통치해 오고 있으며 페쉬메르가(Peshmerga)라고 불리는 민병대로 자체 방어력을 갖추고 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이라크에 새로운  연합정부가 들어서면서 쿠르드족이 이라크 연방 대통령직을 맡는 등 이라크 정부 내의 쿠르드족의 입지를 공고화 하며 단순 자치권 보장이 아닌 독립국가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쿠르드는 무엇을 원하는가? 독립이 아닌 자치권, 그리고 석유

1차 세계 대전 이 후 쿠르드 지역이 이라크에 편입된 이후 약 100년 간 쿠르드 민족주의 운동의 목표는 세가지, 국경선 재정립, 키르쿠크 반환, 반 아랍화 정책 이였다. 이라크 중앙정부는 자국 석유 매장량의 15~20%를 차지하는 키르쿠크와 주변 디얄라(Diyala), 니네베(Nineve) 지역, 그리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술레마니에 지역에 대한 이권을 지키기 위해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과 대립각을 세웠다. 전통적 쿠르드 지역인 북부지역에 아랍인을 이주시키고 쿠르드어 사용을 금지하는 등 아랍화 정책을 폈다. 긴 투쟁 끝에 당시 쿠르드민주당(KDP)의 수장 이였던 무스타파 바르자니(Mustafa Barzani)는 1970년 사담후세인과 협상을 통해 쿠르드자치헌장을 체결한다. 쿠르드자치헌장에서는 쿠르드 전통 공휴일인 노루즈와 쿠르드 대학 설립, 쿠르드어 교육을 승인하고 쿠르드 지역에 독자적 쿠르드 군대 및 경찰력을 보유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이라크 중앙정부는 쿠르디스탄의 중심지인 술레마니에가 아닌 아르빌을 쿠르드 자치지역의 수도로 지정하는 등 산유지인 키르쿠크를 끝까지 양보하지 않았다. 이에 KDP와 이라크 중앙정부 사이에서 긴 내전이 다시 발발 했다. 결국 1975년 사담 후세인이 이란이 더 이상 KDP지원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샤트-알-아랍 수로 국경선 협상에서 이란에게 일방적으로 양보하면서 이란의 지원을 잃은 KDP의 약세로 내전은 종식되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인 동예루살렘 지위 협상 처럼 2017년 현재 까지도 석유 이권이 걸린 국경선 재확정 및 키르쿠크 문제는 이라크 중앙정부와 KRG 사이의 양보 불가한 교착상태로 이어져 오고 있다.

터키, 이라크, 이란고래 싸움에 쿠르드 

이라크 쿠르드 정부의 독립 국가 건설 문제는 비단 이라크 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류 최대 국가 없는 민족 중 하나라는 쿠르드족은 터키, 이란, 시리아 등에도 거주하고 있다. 특히 인구의 40% 이상이 쿠르드 인이며 1980년대 부터 터키 동부를 중심으로 한 터키 쿠르드 독립 반군인 PKK의 테러 공격이 빈번했던 터키의 경우 이번 투표 강행을 강력히 비난하였다. 케말파샤의 세속주의에 근거한 강력한 튀르크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터키는 1924년 터키 근대 국가 수립 이후 쿠르드인 대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등 쿠르드족을 핍박하였다. 자국 내 쿠르드족 독립 자극을 두려워 하는 터키 정부는 다에쉬와 시리아 교전에서 주력역할을 하고 있는 시리아 쿠르드 민병대 YPG (Popular Protection Units)가 반 터키 쿠르드 정당인 PKK(Kurdistan Workers Party)의 분파라고 주장하며 상호 연관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한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터키 동부는 수자원 및 농업,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 이라크 쿠르디스탄 독립 국가 건설은 터키 현 정체를 흔드는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KRG가 국민투표를 강행하자 이라크 쿠르드 정부 원유 최대 구매자 중 하나인 터키정부는 송유관 폐쇄라는 통상압박을 아르빌에 가했다.

 이란의 경우 터키 보다는 쿠르드 독립 문제에 민감하지 않으나 자국 내 인구 10% 정도를 차지하는 쿠르드인 문제, 그리고 KRG와 이라크 정부 사이의 정쟁에 따른 지역 불안 요소에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2003년 사담 후세인 축출 이후 쉬아파 세력이 이라크 정권을 잡으면서 이라크와 이란의 관계도 공고해 졌다. 또한 이라크 남부 쉬아 민병대 세력과 두터운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이란은 자국의 영향력이 보장된 이라크 내 소요를 원치 않는다. 이에 이라크 중앙정부의 요청에 따라 이란 또한 KRG 국민투표 강행에 따라 국경을 폐쇄하는 등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 미국의 경우 1991년 걸프전 이후 쿠르드지역 보호를 위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등 쿠르드족에 대한 유화 정책 및 쿠르드 자치권 보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보였으나 독립에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에쉬가 소강상태를 보이나 아직 근절되지 않았고, 쿠르드 독립에 따른 또다른 중동지역의 분쟁 상황을 원치 않는다. 러시아 또한 KRG가 국민투표를 강행하자 쿠르드 독립으로 중동 지역의 분쟁 상황이 벌어지는 곳을 묵도 하고 있지 않겠다고 밝혔다.

약 100년 간 이어진 기나긴 쿠르드족의 쿠르드독립국가 설립에 대한 염원은 이라크 쿠르디스탄 독립-분리 투표를 이끈 동력이였다. 그러나 쿠르디스탄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쿠르드족의 오랜 염원 뒤에는 이라크 쿠르드 주요 정당인 KDP의 마수드 바르자니(Masoud Barzani)와 PUK의 잘랄 탈랄바니(Jalal Talabani)의 경쟁관계, 쿠르드족 내부 정치적 이해 관계가 존재한다. 또한 이번 국민투표의 쟁점이였던 이라크 최대 산유지 중 하나인 키르쿠크 국경선 문제를 보면 결국 쿠르디스탄을 둘러싼 갈등은 석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알아랍인서울 ‘쿠르드족의 미래는? (2)’ 글에서는 이라크 쿠르드족 내부 정치갈등과 2003년 이후 이라크 중앙정부와의 석유 이권에 관한 줄다리기를 다룰 것이다.

Ahrum YOO is Arab in Seoul’s editor-in-chief. She has a MA in Politics and took a PhD course with reference to Middle East Politics from 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in London. She is specialised in Syrian, Iraqi and Lebanese affairs. Her academic interests are sectarianism, the role of political ideology and identity in contentious politics.

댓글 남기기

*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