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족의 미래는? (3)

출처 : Kurdishstruggle, flikr.com
출처 : Kurdishstruggle, flikr.com

세계 최대 소수 민족이라는 수식어로 널리 알려진 쿠르드 족이 벌이는 독립 투쟁의 역사는 우리에게 그리 생소하지 않다.민족 정체성을 앞세워 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움직임은 2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정치적인 시각에서나 우리의 경험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달성했던 우리도 그렇거니와,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한 동티모르, 유럽의 바스크 많은 경우 독립 국가 수립의 당위성을민족이라는 범주 안에서 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중동 지역 안에서는민족정체성을 내세우는 것은 상당히 독특한 형태라고 있다. 중동 지역의 소수집단 공동체 문제는민족 테두리보다는종교 테두리에서 다뤄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사의 목적은 현대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개념 하나인 민족 정체성을 간과하려는 것은 아니며, 역사적인 맥락에서 쿠르드 문제의 특이성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혈연 공동체가 마이너리티 문제의 핵심으로 다뤄지는 비해 중동에서는 그렇지 않은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기본적으로는 명실상부한 중동의 1 종교인이슬람 평등주의적인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며, 핵심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독특한 지배 구조에서부터 파생된 것이라고 있다. 14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무려 600 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란 모로코 정도를 제외하고 현대에 중동으로 여겨지는 대부분의 지역을 지배했던 오스만 제국의 지배 구조를 간과한다면 쿠르드 문제가 중동에서 특이하게 여겨지는 것인지 제대로 파악할 없을 것이다.

이슬람의 평등주의적인 구조

오스만 제국의 지배 구조를 살펴보기에 앞서 이슬람의 평등주의적인 특성을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슬람은 무슬림(이슬람을 믿는 신자)이라면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 눈동자가 녹색인지 청색인지, 피부가 까만지 아니면 하얗다 못해 창백한지, 고향이 어디며 아버지의 출생지가 어딘지도 무방하며, 심지어는 모국어가 아랍어가 아니더라도 무슬림이면 모두가 같은 인간으로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했다. 따라서 무슬림이면움마(Ummah, أمة)’ 안에서 누구나 권리를 누릴 있었다.

무슬림들이 예배하는 모습

이러한 이슬람의 특징은 예배 방식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고관대작이든 빈민이든 서로 어깨를 맞대고 일렬로 서서 나란히 예배를 드리고 신자라면 누구든지 예배를 인도할 있는 자격이 이슬람에서는 주어진다. 반면 기독교에서 예배를 인도할 있는 자격은 신학을 제대로 공부한 신부(천주교) 목사(개신교) 아니면 되고 심지어 수녀나 장로도 예배를 인도할 자격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오늘날에는 미션 스쿨의 예배 수업을 가리키는 단어로 익숙하지만 기독교의채플(chapel)’ 본래 귀족 저택이나 궁궐에 부속되어 관계자만이 별도로 예배를 있는 곳을 일컬었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왕족이라 하더라도 사원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려야 했다.

물론 시아에서는 성직자가 존재하여 이들이 평신도의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고, 오스만 제국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왕과 가족만을 위한 예배당이 사원에 별도로 마련되는 이슬람 내부에서도 권위와 구별을 위한 움직임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슬람의 기본적인 가르침, 기초적인 구조, 일반적인 양식은 어떤 종교보다 커뮤니티 안에서의 평등을 지향했다고 있다.

이슬람을 국교로 삼은 오스만 제국 역시 그런 평등주의적인 기조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층은 아랍인이 아닌 유목민 계열의 투르크 인이었지만, 복속된 아랍인과 발칸의 무슬림, 아제르 인을 포함한 캅카스 지역의 무슬림을 피정복민이라는 이유로 차별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신앙이 이슬람인 이상 지배층인 투르크 인들과 같은 지위를 누려야 했다. 한편 제국의 범위는 소아시아를 벗어나 북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 캅카스, 발칸 동유럽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에 이교도 역시 다양하게 존재했다. 로마 가톨릭, 동방 가톨릭 계열, 정교회 계열에 유대교까지 제국은 흡사 종교 백화점과도 같았다.

종교적 다원주의, 그리고 밀레트 시스템

그러나 제국은 이들 이교도에게 무슬림의 법도인 샤리아를 적용할 수는 없었다. 샤리아는 무슬림에게만 적용되는 법이었으며,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만큼 강제로 개종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제국으로서는 이들을 무슬림으로 만드는 것보다 이들로부터 세속세인 지즈야(Jizyah, جزية) 걷어 국고를 채우는 오히려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샤리아가 적용되는 무슬림 공동체인움마와는 별도로 소수 종교가 그들의 종교법을 행사할 있는 공동체를 승인하게 되는데, 이것을밀레트(millet)’ 부른다. 술탄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밀레트는 제국이 요하는 최소한의 의무루르 수행하는 개종 없이 저마다 고도의 자치권을 행사할 있었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의 탄지마트 개혁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된 밀레트는 근대의 종교적 다원주의를 대표하며, 어원은국가 뜻하는 아랍어 단어 밀라(millah, ملة)이다. 었으며, 합법적으로 보호받는 소수 종교 집단체를 부르는 용어가 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최대판도를 나타낸 지도, 다종교 국가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 AP World History Wiki, Encyclopedia Britanica, Inc.

그렇기 때문에 같은 민족이라 할지라도 종교가 다르면 저마다 다른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혈통에 따라 공동체가 구분되지는 않았다. ‘시리아 가톨릭 교도 아랍인’, ‘콥트 아랍인’, ‘시아 터키인’, ‘순니 터키인’, ‘아르메니아 정교회 아르메니아인’, ‘아르메니아 복음주의교회 아르메니아인 민족 안에서도 다양한 종교 정체성을 가진 공동체 단위가 생겨났다. 오늘날에도 실로 다양한 종파가 존재하는 레바논의 경우 시민들이레바논 이라는 정체성을 갖기 보다는마론파 기독교도시아 무슬림 본인이 믿는 종파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가운데 오스만 제국이 출현하기도 전에 이미 무슬림이 쿠르드 족은 밀레트 시스템 하에서 자치권을 누릴 없었으며, 아랍 무슬림이나 캅카스 무슬림, 또는 투르크 무슬림과 같이 하나의 무슬림 신민으로 다루어졌다. 물론 동방 정교회나 시리아 가톨릭을 믿는 쿠르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동방 정교회 사람 또는 시리아 가톨릭 교도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 민족을 기준으로 공동체를 구분하는 전통은 최소한 오스만 제국의 영토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양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화된민족이라는 개념은 결국 중동 지역에도 파고들어서 범아랍주의나 범투르크주의 등이 중동 지역을 휩쓸기도 했으며, 국가 단위 별로 독립된 정체성이 형성되고 있는 중이기는 하다. 그러나, 현대 중동 국가의 국경은 대단히 인공적이며 작위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민족 개념, 또는민족 국가 개념을 그대로 중동에 적용시키기는 것은 곤란하다.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나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많은 석학이 민족의 개념이주식회사만큼이나 상상에 기반하는 허상임을 지적하고 있는데, 중동 지역에서는 이러한 지적이 더욱 사실에 가깝다. 과거에도 시리아라는 지명은 있었지만 레바논과 시리아가 분리된 것은 프랑스 식민 당국의 의도였고, 이라크라는 지명 역시 유서 깊지만 오늘날과 같은 모양으로 국경이 확정된 것은 영국 식민 당국의 뜻이었다. 또한 리비아의 베르베르 족과 알제리의 베르베르 족이 서로 다른 국민이 것은 각각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일 이상의 이유는 없다. 따라서 양차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침투한 민족의 개념은 유대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이스라엘, 국명에 민족명을 차용한 이란과 터키  일부를 제외하면 중동 사람들에게 있어 밀레트보다 설득력이 다소 떨어지는 개념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쿠르드 족의 독립을 위한 움직임은 오늘날 국제정치의 관점에서는 이상할 것이 전혀 없지만, 중동 고유의 지정학적 관점에서는 다소 특이한 현상이라고 있다.

알아랍인서울에서는 3편에 걸쳐 쿠르드 국민투표 문제를 다루었다. 민족적 관점에서 쿠르드 문제를 조망한쿠르드족의 미래는? (1)’, 정치 역학과 경제 이권의 관점을 고찰한쿠르드족의 미래는? (2)’ 이어쿠르드족의 미래는? (3)’에서는 중동 고유의 역사적 지정학 측면에서 문제를 다루어 다른 언론과는 달리 최대한 다양한 시각과 다채로운 내용을 가지고 쿠르드 문제를 설명, 독자들의 이해를 도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편에 걸쳐 다룬 내용만으로는 향후 쿠르드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누구도 결과를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고, 전개의 방향을 마음대로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특집기사가 쿠르드 족에 관한 독자들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기를 기대한다.

Won-gu Kang is Arab in Seoul’s editor. He is in a master and PhD integrated course in the Middle Eastern Departement, Graduate School of Int’l and Area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He wants to be a scholar who specialized in Maghrebi politics especially Moroccan modern period and its Makhzen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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