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부자 말레카와 정원사 모함메드

빈부격차, 모로코의 민낯

모로코에서 부자 친구가 생겼다. 20대의 두 자녀를 두었지만 누구보다도 젊게 사는 멜리카는 프랑스에서 건축을 전공하였고, 현재는 프리랜서로 일을 틈틈이 하고 있다. 멜리카의 남편은 의사이다. 그들의 집은 모로코 수도 라바트에 대사관이 밀집되어 있는 ‘스위시’라는 동네에 위치해 있다. 이 집에는 아름다운 조경을 지닌 넓은 정원과 적당한 크기의 수영장이 있고, 그 집의 청소와 가사를 하는 하이야트와 집을 지키고 정원을 돌보는 모하메드가 함께 있다. 우리 가족은 멜리카의 집에 얼마간 머물렀다.

어느 날, 정원을 청소하는 모하메드와 아침인사를 가볍게 나누고 지나가려는데 그날따라 모하메드의 표정이 안 좋다. 그래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더니 머뭇머뭇 조심스럽게 주인집에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하메드의 아들 ‘알리’의 교과서를 아직 준비하지 못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월요일까지 교과서를 준비하지 못하면 학교에 나올 수 없다고 마지막 경고를 했다. 개강한지 3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 최후통첩을 받은 월요일은 바로 다음날이었다. 모하메드는 주섬주섬 바지주머니에서 홀쭉한 지갑을 하나 꺼낸다. 그리고는 지갑에서 고이 접은 종이하나를 꺼내 보여준다. 종이에 적힌 리스트가 구입해야 하는 교재인데, 5권 중 한권에만 가운데 줄이 그어있다. 모하메드는 4권을 더 사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을 구입하려면 얼마가 더 필요하냐고 물었다. 대략 100디람(12,000원) 정도만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얼마를 갖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홀쭉한 지갑 안쪽을 펼쳐 보여주며 50디람(6,000원)이 자신이 갖고 있는 전 재산이라고 한다. 모하메드의 월급날은 한주를 더 기다려야 했고, 아무리 돈이 급하다고 해도 이런 돈 이야기를 집주인에게 꺼내면 일을 그만두게 할지도 모른다고 어려워했다. 일단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신랑과 상의하여 아들이 계속해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교과서를 살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결정했다.

어떻게 보면 주목받지 못할 사소한 사건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 일이였다. 사실 이 일이 있기 한 주 전, 단순한 호기심과 오지랖에 이들의 급여가 얼마인지가 궁금해 했었다. 모하메드는 한달에 1,500디람(180,000원)을 번다고 말해주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보통 그들의 직업은 상주하는 경우 더 많이 받기도 하지만 모하메드의 집과 주인집을 오가며 돌보기 때문에 급여가 더 낮았다. 모하메드는 한 달 동안 이 금액으로 자신의 어머니와 딸린 2명의 자녀 그리고 아내를 부양해야 했다. 식사는 개인이 알아서 해야 했고 가끔 주인집에서 남은 식사를 하이야트가 챙겨주기도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모하메드는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다행이 집은 라바트 내에 있었다. 그래서 대중교통이나 택시가 아닌 자전거로 이동이 가능했다.

물론 이전에도 모로코의 임금은 상당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과 실업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8년 전 내가 모로코에서 봉사단원으로 머물러 있을 때에는 그들의 민낯을 속속들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그래서 항상 이들에게 어떠한 방법과 접근이 효율적으로 그들의 삶을 도울 수 있을지를 고민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위치로 이곳에 와있기에 그들의 삶을 볼 기회가 더 적었다. 아니다. 사실은 길거리를 다니면서 구걸하는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때로는 모하메드나 하이야트를 보면서 과거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었다. 다만, 내 삶을 사느라 정신이 없어 그들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나는 딱히 투철한 봉사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이들의 삶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고, 나의 감정이 메말라 있었다는 것이 내게 더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구걸을 하고 있고 한 지붕 아래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있지만, 매일 접하는 일상이 되다 보니 내 감정이 무뎌져 갔던 것 같다.

많은, 혹은 대부분의 모로코 사람들의 경제수준

모로코 사람들의 임금은 현재 어느 정도 수준일까? 2016년 모로코의 GDP는 미화로 약 2,832불 정도로 세계은행 통계에서는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숫자마저도 모든 모로코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2017년 9월 17일자 모로코 뉴스 기사에서는 모로코 GDP의 절반은 라바트나 카사블랑카에서 온 것이라고 알렸고, 2016년 9월 30일자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피에르 돔은 ‘악덕사업가가 된 모로코 국왕의 부도덕’이라는 제목으로 모로코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는데, 모로코의 세 청년의 삶과 경쟁이 불가능한 국왕의 이야기로 시작된 기사는 모로코 사람들의 처절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주변의 지인들만 봐도 그렇다. 한 지인의 가족 중 둘째 언니는 군에서 15년 이상 근무했고 월 4500디람(539,300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그리고 셋째 언니는 경찰서에서 비서로 10년 이상 근무했으며 월 3500디람(419,400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셋째 언니의 남편은 건축 관련 일을 하는데 제 작년부터 많은 건축회사가 파업을 했고 급여가 1년 이상 밀린 곳이 허다하며, 현재는 그 자리조차 없어 무직상태라고 한다. 넷째 오빠와 막내 남동생도 건축을 공부했으나 그들도 일거리가 없어 무직상태로 있다. 또한 모로코 학교 선생님의 초봉은 월 2500디람(299,600원) 정도라고 한다. 멜리카의 집에서 일하는 하이야트 같이 거주형 메이드는 일주일에 약 700디람(83,900원) 정도를 받는다. 그리고 페즈의 염색공장에서 하루 종일 무두질을 하는 사람은 일당 100디람(12,000원) 정도를 받는다. 1박 2일 사막투어에서 낙타몰이를 하는 사람은 50디람(6,000원)정도를 받는다. 하지만 정형외과 의사의 기본 진료비는 약 400디람(47,900원)이며, 치료가 필요할 경우에는 추가 금액이 붙는다. 소아과 의사의 경우도 기본 진료비는 약 300디람(35,900원) 정도의 선이다. 기관 또는 보직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국제기구 같은 곳에 일하면 약 9,000디람(1,078,000원) 전후로 받기도 한다.(급여내용은 지인들에게 짧은 인터뷰로 얻은 정보를 토대로 기재했으며, 실제와 약간의 오차는 있을 수 있습니다.)

8년 만에 돌아온 라바트에는 새로운 멋진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도시는 이전보다 더 커졌으며 이전에 없던 멋진 놀이터와 축구장등이 들어섰다.(하지만 축구장은 시간당 100-150디람을 받는 유료임) 라바트 해안가나 살레를 지나가는 길목의 강 하류에는 고급스러운 아파트나 크고 화려한 극장이 들어서기 위해 한창 공사 중이다. 그래서 모로코가 이전보다 더 경제성장을 이루고 그 혜택이 어느 정도는 서민으로 가지 않았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물가도 8년 전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2008년 당시 4디람(약 500원)이던 시내버스 요금도 2017년 현재에도 여전히 4디람으로 동일했다. 이들의 주식인 홉즈라는 동그란 빵도 작은 슈퍼마켓(하누트)마다 다르지만 1디람에서 1.5디람(120원-180원) 선으로 비슷했다. 야채도 마찬가지로 대형 마트나 고급 지역의 마트에서는 더 비싸지만 로컬 시장(수크)에 가면 킬로에 2디람에서 4디람(240원-480원) 사이로 비슷했다. 과일의 가격도 종류마다 다르지만 로컬 시장의 가격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 기차나 장거리 버스의 경우 약 5-10%정도 인상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급동네가 아닌 일반 서민지역을 중심으로 조사한 가격임을 밝힙니다.) 주변 모로코 지인들도 과거 8년 전에 비해 공산품 일부 물가가 인상된 부분이 있었으나 식생활과 관련되어서는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얼핏 보기에는 물가도 많이 올라가지 않았고 계속 새롭게 짓고 있는 건물들과 팽창해가는 도시는 경제성장을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 대부분의 서민들이 느끼는 경제성장은 아니었다. 도시는 발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직 또는 외국계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임금은 이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매우 낮다. 잘사는 사람들만 더 잘 살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전과 같이 그대로 살고 있다. 특히, 지난 2년간 건축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었고, 여전히 무직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멜리카와 모로코 다양한 지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모로코는 대도시를 제외하곤 병원이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모로코 사람들은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있는 돈이 없기 때문에 소도시나 시골에는 좋은 병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이들의 임금으로는 당연한 이야기였다. 모하메드의 경우만 봐도 한 달에 월급 18만원으로 늙은 어머니와 가정을 돌봐야 했다. 모하메드의 이는 이미 여럿 빠져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를 사용할 수 있게 치료를 받고 가능하면 오랫동안 이를 보존하겠지만, 모로코에서는 이가 썩어서 통증으로 더 사용하기 어려운 때가 오면 그냥 뽑아 버린다. 8년 전과 비교해서 분명 경제성장은 했는데, 그 부는 그들에게 별로 돌아가지 않았다. 모하메드는 다음 주 급여일까지 6,000원을 가지고 생활을 했어야 했다. 그리고 6,000원만 더 있으면 아들에게 교과서를 사서 학교에 보내줄 수 있을 텐데, 단돈 6,000원이 없었다.

이제 나는 그들의 삶에 더 관심을 갖고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모로코의 민낯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가 들려왔다. 계속 관심을 갖고 그들을 도울 궁리를 하다보면 별안간 좋은 생각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그리고 때론 현지인들보다 택시 요금을 더 내더라도, 메디나 시장에서 현지인들 보다 좀 더 비싼 값에 모로코 전등을 구입하더라도 외국인으로서 조금 더 넉넉한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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