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전부인 그 곳

jandenouden, fliker

십자군 전쟁을 다룬 영화 <킹덤 오브 헤븐> 마지막 장면, 주인공 발리안은 적국 장수인 살라훗딘에게 묻는다. “What is Jerusalem worth?”

(예루살렘은 무엇입니까?) 백전노장 살라훗딘은 답한다. “Nothing” (아무것도 아니지), 그리고 다시 쓴웃음과 함께 내밷는 묵직한 한마디, “Everything” (모든 것이기도 하고). 영화의 최고 명대사 이기도 한 이 짧은 선문답에 중동의 화약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심이 들어있다. 이슬람, 기독교, 유대교, 세 종교의 상징적 최고 성지 이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양 측에서 자국의 수도로 주장하는 예루살렘. 지난 6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다는 발표 후 전 세계의 이목이 예루살렘으로 모이고 있다.

중동 분쟁의 발화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1948년 일방적인 이스라엘 근대국가 수립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하 이-팔 분쟁)은 약 70여 년간 이어오고 있다. 중동 분쟁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이-팔 분쟁의 핵심은 1) 팔레스타인 난민 귀향권, 2) 이스라엘 정착촌 철수, 3) 동(東)예루살렘 지위, 이렇게 세 가지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UNRWA, the United Nations Relief and Works Agency for Palestine Refugees in the Near East)에 등록된 팔레스타인 난민은 2017년 기준 약 5백만 명으로 추산된다. 유엔에서 규정한 팔레스타인 난민은 1946-1948년 분쟁 및 1967년 중동전쟁 등으로 고향을 떠나 현 서안 (The West Bank), 가자지구(The Gaza Strip),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등으로 피난했거나 쫓겨난 사람을 말한다.

1950년 당시 UNRWA 기준 약 95만 명에 달했던 팔레스타인 난민 수는 70여년 동안 타국에서 2등 국민 대우를 받으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현재 요르단 인구의 약 절반이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으로 추정되며 현 요르단 라니아 왕비 또한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이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정체성은 ‘언젠가 돌아갈 고향, 팔레스타인’이라는 귀향에 대한 신념으로 규정된다. 2016년 기준 이스라엘 인구 수는 약 8백 20만으로 이 중 25%는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아랍인이다. 난민 귀향권(the right of return)을 인정할 시 약 5백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이 가질 압도적 인구 수 우위는 자국민유대인 인구가 점차 줄고 있는 이스라엘 입장에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난민 귀향권을 반대하며 이디오피아 등 해외 체류 유대인의 이스라엘 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두 번째 이슈인 정착촌은 이-팔 분쟁을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다. 1967년 이후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 지역에 이스라엘 자국민의 정착촌을 짓고 있는 이스라엘의 행위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지리적 결속력을 막고 불법 이스라엘 정착촌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에 대한 자국의 통제권을 점차 늘려나갔다. 특히 1990년 이후 러시아에서 이주한 유대인 이민자의 주거지 확보 및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의 유대인 정착촌의 수를 늘려갔다. 2006년 국제사회의 요구와 화해의 제스처로 이스라엘 샤론 정부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만 정착촌을 철수 하였으나 이내 가자는 고립되었고 서안 지구의 정착촌은 더 늘어나게 되었다. 정착촌 철수는 비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부 간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이 극우 성향인 정착촌 유대인 주민의 정치적 지지 및 표가 필요한 이스라엘 정치인으로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사안이다.

신화의 탄생, 동()예루살렘

출처 : wikitravel

출처 : <중동의 재조명> 최성권, 한울, 네이버지식백과

 

예루살렘은 고대부터 내려온 구도심(Old City)을 포함한 동(東)예루살렘과 1948년부터 이스라엘에 귀속된 서(西)예루살렘으로 나뉜다. 트럼프의 발언으로 논란이 된 분쟁의 핵심인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성지인 ‘바위의 돔’과 유대교의 성지인 ‘통곡의 벽’이 위치한 “동(東)예루살렘”을 가리킨다. 아랍어로 “알-꾸드스(Al-Quds, 성스러운 도시)”로 불리는 동예루살렘은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의 성지다. 특히 분쟁의 핵심인 동예루살렘의 구 시가지(Old City)는 이슬람, 기독교, 유대교, 아르메니아 이렇게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주요 종교 성지인 ‘바위의 돔 (Dome of the rock)’, ‘통곡의 벽’ 등이 위치하고 있다.

예루살렘은 메카, 메디나를 잇는 이슬람의 세 번째 성지로서 무슬림들은 선지자 무함마드(Muhammad)가 이 곳 예루살렘에서 승천했다고 믿는다. 무함마드가 승천한 자리에는 현재 ‘바위의 돔’ 사원이 세워져 있으며 무슬림들은 대천사 가브리엘과 함께 무함마드가 천국으로 올라갔다고 믿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쳤다고 믿고 있다. ‘바위의 돔’에 이웃한 ‘알-아크사 사원 (Al-Aqsa Mosque)’ 또한 이슬람의 중요 성지로 여겨지는데 두 건물 모두 기독교에서 솔로몬의 성전이라고 주장하는 성전산(The Temple Mount)위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성전산의 서쪽 벽이 바로 유대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성지로 주장하는 ‘통곡의 벽’이다.

통곡의 벽에서 유대인, 출처 : jandenouden, flikr

알아크사 사원, 출처 : Kristoffer Trolle, flikr

 그러나 동예루살렘을 두고 벌어지는 분쟁의 본질은 종교적-민족적이기 이전에 정치적인 것이다. 종파 및 지역-부족주의를 초월한 국가 민족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정치 지도자들이 많이 쓰는 방법은 ‘고대 역사의 재발견’이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축출된 이집트 전 대통령 무바라크는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를 강조한 ‘이집트 민족주의’를, 1979년 혁명으로 축출된 이란의 무함마드 레자 샤 팔레비 전 국왕은 ‘페르시아’를 강조한 ‘이란 민족주의’를 외치며 유적지인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를 전략적으로 사용하였다. 약속된 땅,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바로 ‘솔로몬 신전’의 한 부분이라고 ‘믿어지는’ ‘통곡의 벽’과 동일시 된다. 로마군에 파괴되어 유일하게 남아있다고 믿어지는 유대인 귀향의 정당한 고고학적 증거라 주장하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의 실질적 행정 수도는 텔아비브(Tel-Aviv)이나 상징적 수도는 현재까지 예루살렘이다. 동예루살렘의 이스라엘 귀속, 그리고 수도 천명은 이스라엘이라는 유대 국가의 정당성을 뒷받침 해 주는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19세기 초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한 시오니스트 세력은 유대인 민족 국가를 세우기 위해 ‘유대 민족주의’을 재생시키는 일에 착수한다. 그 첫째가 이미 사어(死語)가 된 히브리어를 부활시키는 일 이였다. 러시아 출신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한 유대인 벤 예후다(Ben-Yehuda) 19세기 초 종교언어로만 쓰이던 고대 히브리어와 동유럽 유대인들이 쓰던 이디쉬어(Yidishi)를 참고하여 현대 히브리어(Modern Hebrew)를 만든다. 당시 유대국가건립의 뜻을 같이 하던 유대 청년들과 함꼐 히브리어 사용 운동을 전개 하고 히브리어 신문을 편찬 하는 등 ‘유대 민족주의’를 부흥시키기 위해 사활을 건다. 이후 대중 교육 등을 통해 현대 히브리어는 일상언어이자 이스라엘 국가 건설을 위한 유대인 정체성 형성의 동력이 된다.

동예루살렘의 문제는 비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스라엘 국가의 주권 독립과 팔레스타인 및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 주변 이해 아랍 세력 간의 싸움이다. 1948년 1차 전쟁을 시작으로 이스라엘 주권 독립과 팔레스타인 땅 회복이라는 명제로 1956년, 1967년, 1973년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은 4차에 걸친 전쟁을 치뤘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당시 요르단 지배 하에 있던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를 강제로 점령하고 현재까지 불법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1960~70년대 ‘아랍민족주의(Pan-Arabism)’에 고무된 당시 이웃 아랍국가들의 국민들에게 팔레스타인은 ‘남’이 아닌 ‘아랍인의 정체성’과 ‘정의’에 관한 ‘자신’의 문제였으며 ‘팔레스타인 국가 회복’은 당시 아랍 사회주의 및 독재 지도자들의 정권 정당성을 보증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정치적 장치였다.

약 40여년 간의 분쟁의 교착상태 후 1980년대 후반 소련이 붕괴하고 1989년 팔레스타인 1차 민중봉기 인티파다(Intifadah)가 일어나면서 1991년 마드리드 중동평화 회담을 시작으로 이-팔 분쟁의 평화의 물고를 틔게 된다. 이 때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 ‘영토와 평화의 교환 (land for peace)’로 팔레스타인과 아랍 이해 국가들은 기존 1948년 이전의 완전한 영토회복이라는 기치를 버리고 1967년 전쟁 전의 ‘두 국가 분할’ 안에 합의하게 된다. 이후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 (Oslo Peace Accord)까지 평화 회담은 순항을 타는 듯 보였으나 평화회담의 주동자였던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가 1995년에 암살되고 동예루살렘 문제 등 양측에서 합의 불가한 사항에 줄다리기가 계속되며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평화회담 실패 후 이스라엘에는 극우 보수정권이 들어서게 되며 이에 기폭제가 된 것이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2000년 9월 알-아크사 방문이였다. 알-아크사 사원은 이슬람의 상징이자 ‘팔레스타인 주권’의 상징으로 이스라엘 정치인에게 (禁域)의 공간이였으나 샤론은 불문율을 깨고 알-아크사 사원을 방문,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주권을 주장하였다. 이는 곧 팔레스타인과 아랍국가의 분노를 일으켰으며 제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의 시발점이 되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행정 수도는 지중해에 위치한 텔-아비브(Tel-Aviv)였다. 안전 및 이웃 아랍국가들과 관계를 고려하여 외국 대사관들 또한 이 텔-아비브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전략적으로 자국에 귀속된 서예루살렘을 확장 해 왔으며 동예루살렘 내부에 유대인 정착촌을 늘려왔다. 이스라엘 정부의 압력에 동예루살렘 구도심에 거주했던 아랍인의 이주도 늘고 있다. 이-팔 분쟁의 도화선인 예루살렘, 이번 트럼프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인정’ 및 ‘미(美) 대사관 예루살렘’이전 발언은 팔레스타인의 주권을 무시하고 그 동안의 이-팔 분쟁 평화적 해결을 요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트럼프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지만 러시아 스캔들을 잠재우고 미국 내 AIPAC(The 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 을 중심으로 한 유대 로비 세력과 트럼프의 지지세력인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한 발언이라고 해석하기엔 트럼프가 무리한 자충수를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예루살렘, 인간의 존엄이 잊혀진 Nothing, but Everything

이스라엘의 모든 유대인이 동예루살렘 이스라엘 귀속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적 공존을 지향하는 대표적 단체인 피스나우(Peace-Now)가 대표적 이스라엘 진보평화단체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주권 국가 설립을 지지하며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아랍인들과의 유대를 강조한다. 일부 유대인 평화 운동가들 중에는 분쟁의 상징이 되어버린 ‘통곡의 벽’을 부수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세계 언론에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극우파 이스라엘 정치인들의 대중영합주의에 기반한 강경발언에 묻히곤 한다.

2009년 필자는 레바논의 대표적인 팔레스타인 난민촌 사브라(Sabra)를 방문하였다. 1982년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은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에 의해 약 3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난민과 쉬아파 레바논인이 무참히 대량 학살된 곳이다. 레바논으로 이주한 팔레스타인 난민은 레바논 시민권을 가질 수 없으며 재산 소유 금지 및 고용제약으로 열악한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약 2000명 정도 수용 가능한 지역에 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난민이 살고 있으며 대학에 진학하는 이는 고작 일 년에 두 세 명, 대다수의 어린이들은 마약운반이나 구걸을 하는 등 빈민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필자는 그곳에서 만난 한 팔레스타인 NGO 대표에게 열악한 상황에도 이곳에 남아있는 이유를 물었다. 나즈막한 목소리로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귀향, 제 어머니의 고향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는 것은 우리 팔레스타인 그 자체 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지난 반 세기 동안을 버텨왔습니다. 귀향, 그 자체가 팔레스타인인 입니다.”

 

Ahrum YOO is Arab in Seoul’s editor-in-chief. She has a MA in Politics and took a PhD course with reference to Middle East Politics from 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in London. She is specialised in Syrian, Iraqi and Lebanese affairs. Her academic interests are sectarianism, the role of political ideology and identity in contentiou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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