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딜레마-개혁이냐 현상 유지냐, 그것이 문제로다.

누구나 한번쯤 들었을 헴릿의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화려한 왕궁에서는 누군가 아마 이렇게 외치고 있을 것이다. “개혁이냐 현상 유지냐, 그것이 문제로다.” 지난 11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젊은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Muhammad Bin Salman) 은 ‘부패척결’, ‘반(反)이란’을 주창하며 대대적 숙청 및 개혁의 도화선을 지폈다. 이번 아랍인서울에서는 무함마드 빈 살만의 ‘왕자의 난’이 왜 사우디 국민들에게 환영 받고 있는지 사우디 내부 지리적, 경제적, 사회적 요인을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알-아흐싸, 분쟁과 번영의 화수분

사우디 아라비아는 크게 히자즈(Hejaz), 나즈드(Nejd), 아시르(Asir), 알-아흐싸(Al-Ahsa) 이렇게 네 지역으로 나뉠 수 있다. 이슬람 제 1,2 성지인 메카, 메디나가 위치한 히자즈 지역은 홍해를 낀 사우디 아라비아 서부 해안 지역을 포괄한다. 항구 도시인 젯다(Jeddah)는 히자즈의 중심도시로 내륙 지역인 나즈드에 비해 개방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 지역은 현 사우드 왕가 통치 아래에 놓이기 전 전통적으로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의 후손인 하쉼가문(The Hashemite)이 통치하였었다. 내륙 지역인 나즈드는 현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타 지역에 비해 매우 보수적이다. 현 사우디 아라비아 통치 가문인 사우드 가문의 기반인 나즈드 지역은 사우디 아라비아 정치의 중심지역이다. 알-아흐싸 지역은 페르시아 만에 걸쳐 위치한 사우디 동부 지역으로 나즈드 지역에 비해 개방적이며 사우디 최대 유전인 가와르(Ghawar) 유전을 포함한 유전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알-아흐싸 지역에는 사우디 인구 약 30%에 해당하는 시아파 주민이 대거 거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히자즈 남부, 예멘 국경에 인접한 아시르 지역은 사우디 내에서 가장 낙후된 곳으로 시아파의 분파인 자이디(Zaidi)파가 많이 거주하고 있다. 최근 사우디 수도를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예멘 반군 후티가 바로 이 자이디파에 속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적대관계는 단순히 수니-시아 종교 때문일까? 사우디-이란 대결 구도의 종파 분쟁은 알-아흐싸(Al-Ahsa), 사우디 아라비아 유전의 심장인 이 동부지역에서 시작된다. 사우디 대외정책의 본질은 사우드 왕가의 생존이다. 지리적, 문화적으로 이란과 가깝고 대규모의 시아파가 거주하는 동부지역은 반(反)사우드 왕정세력의 중심지이자 또한 아이러니 하게도 왕정을 지속시켜 주는 석유와 담수가 공급되는 경제 화수분이다. 사우디 주요 내륙 및 해양 유전이 이 곳 알-아흐싸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사우디 경제 중심인 아람코(Aramco)의 본사가 위치한 경제 중심지다. 또한 사우디 타 지역에 비해 담수가 풍부해 농업이 발달되어 쌀, 대추야자 등이 생산된다. 사우디는 대표적 물 부족 국가로 해양 담수화 시설을 통해 약 50%의 담수를 공급받는데 이는 2010년 기준 전 세계 담수화 량의 18%를 차지한다. 특히 사우디 수도인 리야드의 경우 동부 지역에서 담수를 공급받고 있다. 또한 매일 세계 석유거래량의 20%가 운행되는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도 바로 이 알-아흐싸 지역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지정학적 중요성에 비해 이 동부지역 인구의 대부분은 수니파 종주국을 자청하는 사우디 정부와 달리 시아파이다. 사우디 전체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는 시아파의 대부분은 바로 이 동부지역에 전통적으로 거주하여왔다. 이란의 영향을 차단하고 수니파 왕가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사우드 왕가는 시아파를 차별해 왔다. 특히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성공 이후 이란 팔레비 국왕이 국민들의 손에 의해 축출되고 ‘이슬람 정부’가 수립되자 사우드 왕가는 이슬람 종주국이라는 종교적 정통성 손실 및 대중혁명에 의한 왕권 정복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최근 사우드 왕가는 만연한 부패, 높은 실업률, 정부의 모순적 반(反)이슬람 행동 등으로 국민의 지지를 잃어가면서 이란 견제 노선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이 중동 전 지역을 휩쓸자 압둘라 전 국왕이 국민을 달래기 위해 1300억 달러를 뿌렸지만 이에 감사해 하는 사우디 국민은 많지 않았다. 정부의 무상 지원 및 희사는 이제 사우디 국민들에게 당연한 일이 되었고 현 국민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청년층은 모순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반해 이란은 보수적이고 부패한 몇 지도자들에 대한 불만은 많으나 1979년 혁명으로 세운 체제 자체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크지 않다. 이익 집단 등 모든 사회 집단 활동이 금지된 사우디 아라비아와 달리 제한적이지만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고 있고 국민의 목소리가 들어갈 수 있는 사회 집단이나 통로가 존재한다. 이에 사우드 왕가는 지속적 권력 안정을 위해 미국을 중요 동맹국으로, 이란을 종교적-정치적 주요 위협으로 여기며 이란의 부상을 견제해오고 있다.

source : the economist

source : WIF

과거의 사우디 지도와 알-아흐싸 지역

사우디의 빈곤층, 석유라는 검은 베일 아래 가려진 사우디의 그늘

 2002년 필자가 진학했던 아랍어과에 내려오는 전설적 이야기가 있었다. 한 선배가 아랍어 통역에 대한 보답으로 사우디 왕자에게 고급 승용차 한 대를 받았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짧은 이야기는 현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고착화 된 이미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고급자동차 안에서 새하얀 전통옷 ‘싸웁 (Thoub)’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채 고급 시가를 피우는 부자 사우디인. 세금 면제, 전 국민 무상 교육 등 부자 국가로 여겨지는 사우디 아라비아에도 거지가 존재하고 빈곤층이 가득한 달동네(Slum)가 있다면 믿는 이가 얼마나 될까?

1980년대 전 세계적 석유 수요 하락으로 인한 저유가로 국가 예산의 90% 이상을 석유 자원에서 얻는 사우디의 경제는 악화 되었다. 사우디의 몰락한 중산층은 빈곤층을 형성 하게 되었고 현재 약 40%의 가구가 한 달에 약 850달러 이하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저생계비가 약 480달러 미만인 극빈층은 국민의 19%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부의 개선 정책 및 복지 정책은 거의 부재하여 대부분의 극빈층은 민간 자선단체에 의존해서 생계를 잇고 있다. 사우디의 빈곤문제에 관심을 보인 건 정부가 아닌 사우디의 젊은 청년들 이였다. 사우디 청년 피라즈 부끄나(Feras Boqna)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리야드 근교의 빈곤지역을 취재하여 유튜브에 올렸다. ‘우리는 속고 있어! (Mal3ob 3alena,ملعوب علينا)’라는 제목의 약 10분 짜리 영상은 사우디의 감추고 싶은 민낯을 보여주었고  사우디 청년층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피라즈와 그의 동료들은  사우디 보안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사우디 내 경제활동 인구의 약 2/3은 외국인이다. 특히 침체된 민간 부문 종사자 10명 중 1명 만이 사우디 출신일 정도로 사우디 국민은 지난 60년 간 전통적 순응주의와 지적무력감, 경제활동 의지 무력감에 도취되어 있다. 사우디 정부는 1970년부터 지난 40년 간 5개년 계획을 통해 탈석유-경제 다각화 정책을 실시하였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오늘날까지도 제조업은 사우디 GDP에서 고작 10퍼센트를 차지하는 반면, 석유화학은 65퍼센트를 차지한다. 또한 사우디 경제 구조 상 공공 부문이 부를 창출하고 하청 및 보조금 형식으로 민간 부문에 투자하기 때문에 막대한 공공재산이 낭비되고 있다. 매년 대학 졸업생의 60퍼센트가 여성이나 사회적 제약 때문에 전체 노동력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12%이다. 청년 실업률이 2016년에는 약 40%를 웃돌았고 만연한 부패, 열악한 암기-종교 위주의 교육, 여성 취업 장벽, 경제 부문의 심각한 구조적 경직성, 높은 출산율, 자국민의 육체노동 및 서비스업 기피 현상으로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기존 사우드 왕가는 국민의 정치적 복종과 사회 순응을 안보와 번영으로 맞바꾸어 제공하였다. 특히 정부 보조금에 대한 국민들의 절대적 의존성으로 국민의 정치참여에 대한 요구를 차단해왔다. 하지만 경직된 정권, 무기력한 사회, 만연한 부패 및 왕가와 특권 엘리트 계층의 과시적 화려함에 지친 사우디 젊은층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 활동이나 이익 집단 활동이 금지된 사우디 내에서 개인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 정치 의사를 반영할 통로가 막힌 상황에서 피라즈 부끄나 같은 용기 있는 사우디 젊은이들은 인터넷 상에서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무함마드 빈 살만의 개혁 노선의 강력한 지지층이다.

권력과 부족주의, 신구세력의 보수-개혁 전쟁

현재 사우디 국민의 약 80%는 고향을 떠나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도시화로 많이 옅어졌다고 하나 부족주의, 가문중심의 문화와 정치는 아직도 사우디 아라비아 사회에 깊이 뿌리 박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 초대 국왕인 이븐 사우드는 무력으로 복속한 부족들의 충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결혼을 선택했다. 이에 약 33명 이상의 아들을 두었고 모친 출신 부족 간의 권력 투쟁을 막기 위해 형제상속을 명했다. 이븐 사우드 사후 첫째 아들인 사우드 국왕을 시작으로 파이잘, 칼리드, 파드, 압둘라가 차례대로 왕위에 올랐고 현재 8번째 왕자인 살만이 사우디 아라비아를 통치하고 있다. 현재 사우디에는 이븐 사우드의 아들 외에도 손자, 증손자까지 왕자가 7000명을 선회하고 있으나 아직도 노쇠한 1세대 왕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어 사우디 내, 외부적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 1936년생인 살만 국왕은 금년 82세이며 그 다음 서열인 무끄린 왕자는 1945년생으로 차기 지도자의 고령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시되어 왔다. 이에 살만 국왕은 자신의 아들인 서른 둘의 무함마드 빈 살만을 왕세자로 임명하게 된다.

2017년 겨울,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의 거침없는 행보가 성공하여 차기 왕위를 잇는다면 전통적인 형제상속이 아닌 살만(Salman)가의 직계가족이 그 아들과 손자들에게 왕위를 영구 승계함으로써, 다른 방계가족의 통치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사우디가 민주주의나 공화정을 채택한다면, 각 부족이 모두 정당이란 이름아래 부족의 이익을 내세우려 할 것이다. 결국 사우디는 개혁을 열망하는 젊은 세대와 변화보다는 지속을 추구하는 노쇠한 기득권 사이의 첨예한 갈등을 지속하게 될 것이다. 사우디인 60%가 20세 이하며 이들은 인터넷, 소셜미디어, 위성 텔레비전 덕분에 정부의 부패와 무능함, 사회 불의와 부의 불균형을 잘 알고 있다. 사우디 젊은 층은 개혁을 부르짖고 있으나 기득권인 고위 왕족들은 지난 반 세기 동안 변화가 충분히 이루어 졌다고 믿고 있는 실정이다. 승계 구조에 대한 긴장으로 사우드 왕가의 기득권 세력은 종교적 동맹에 더 호의적으로 기울며 무함마드 왕자의 개혁을 저지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혁인가 현상유지 인가? 21세기 사우드 왕가의 딜레마

문명의 충돌로 유명한 사무엘 헌팅턴 교수는 “알-사우드 왕가와 같은 군주는 개혁으로 파생한 정치 참여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실제적 능력을 새로 얻기 전에, 전통이라는 후원 아래 발전시켰던 정책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잃게 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이제 신세력의 개혁도, 구세력의 보수 노선도 사우드 왕가가 포기할 수 없는 생존전략이 되었다. 알-사우드 왕가가 “개혁“을 추구할 때 마다 맞닥뜨리게 될 딜레마에 32세의 젊은 왕자가 선봉에 나서 칼을 뽑아 들게 된 것이다. 국가 통제에 따른 안정, 그리고 경제 발전과 사회의 급속한 변화 사이에서 젊은 왕자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실패한 개혁의 역풍은 더욱 매섭다. 사우디 국민들은 이미 1975년 개혁 노선의 파이잘 국왕의 사망 이후 후퇴한 사우디 사회를 겪었다. 만일 야심찬 젊은 왕자가 젊은 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개혁’에 성공한다면 사우디아라비아는 부족주의와 석유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이다. 하지만 기존 종교세력과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여전히 거센 만큼 조금 더 신중하고 장기적으로 개혁의 절차를 밟아나가야 할 것이다.

Ahrum YOO is Arab in Seoul’s editor-in-chief. She has a MA in Politics and took a PhD course with reference to Middle East Politics from 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in London. She is specialised in Syrian, Iraqi and Lebanese affairs. Her academic interests are sectarianism, the role of political ideology and identity in contentious politics.

댓글 남기기

*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