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어가 새겨진 화폐는 누가 만들었을까?

10680894 - arabic banknotes and coins

어느 순간부터 현금을 들고 다니는 일이 적어졌다. 금전적 거래를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장소에 작은 단위의 돈까지 카드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왠지 현금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간혹 카드 계산이 불가능한 곳을 만나게 되면 적잖은 당황을 하지만, 스마트폰과 손가락 몇 번의 움직임만으로 순식간의 거래가 완료된다. 제조에도 많은 비용이 소요되고 유통이 잘 되지 않는 동전을 카드에 적립하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방안이 제시되는 등, 인간 사회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화폐는 또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 할 준비를 하고 있는 듯 하다.

화폐는 사람 사이의 약속이다. 실제로 화폐 자체가 쓰여진 숫자만큼의 가치를 현실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가치를 갖고 있으니 그 만큼의 교류가 가능하다는 약속과 믿음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각 국가별로 화폐의 가치는 모두 다르며 여기에서 환율과 같은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인류가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 물물교환의 형태로 시작된 거래는 조개껍데기와 같이 가치를 대변하는 물건을 화폐로 삼아 교환하기 시작하였고 과거 대부분의 사회는 실제로 사람들이 가장 가치 있다고 여겼던 금과 은으로 화폐를 주조해 사용하였다. 이 후, 역사의 흐름에 따라 금화와 은화는 과거 속으로 사라지고, 현재의 종이 화폐와 동전, 카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거래 수단이 생겨났다.

작은 동전 속의 세계, 화폐로 보는 이슬람 제국

7세기 이슬람 세계가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발흥한 이 후, 이들은 어떤 화폐를 사용하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번 글을 통해서 이슬람 초기 사회에서 사용하던 화폐와 변화, 의미에 대해 살펴보자. 612년 첫 계시를 받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전파하기 시작할 때, 세계 질서는 비잔틴 제국과 사산 왕조라는 거대한 두 제국이 나누어 갖고 있었다.

<사산왕조의 금화, 출처 : romanumismatics.com>

예언자 무함마드의 시대를 거쳐, 아부바크르(Abu Bakr), 오마르(Umar), 오스만(Uthman), 알리(Ali)로 구성된 정통 칼리프시대를 지나 우마위야왕조(Umayyad Daynasty)에 이를 때까지, 이슬람 세계의 사람들은 독자적인 화폐가 아닌, 비잔틴 제국과 사산 왕조의 화폐를 사용하였다. 현대에 비유하자면 중국의 돈과 일본의 돈을 우리나라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던 것과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과거의 화폐는 말 그대로 금 1온스가 정확하게 금 1온스 만큼의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느 왕조에서 주조한 화폐든지 간에 화폐 자체가 귀중품 그 자체였기 때문에 동등한 가치의 물물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잔틴 제국의 화폐, 출처 : ngccoin.com>

비잔틴 왕조와 사산 왕조의 화폐에는 그 화폐를 주조한 왕의 얼굴과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우마위야 왕조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칼리프 압드 알-말릭(Abd al-Malik)은 이 점을 주목하였다. 화폐에 사람의 얼굴이 그것도 비무슬림인 다른 국가의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모습은 아마도 상당히 못마땅한 사실이었을 것이다. 특히 무슬림으로서 매우 신실한 종교 활동을 유지했던 압드 알-말릭은 칼리프 직을 계승한 후, 이슬람 만의 독자적인 화폐를 주조하기 시작하였다. 화폐를 제작해서 보급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금·은을 확보하고, 의미 있는 문양을 새겨 넣어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어느 왕조건 간에 독자적인 화폐를 제작해 보급한다는 것은 왕조의 시스템이 갖춰지고, 왕권이 안정기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마위야 왕조 압드 알-말릭의 금화, 출처 : History2701

압드 알-말릭은 이슬람적인 가치를 잘 보여주는 형태로 화폐 개혁을 실시하였다. 동전에 새겨지던 왕의 얼굴을 삭제하고, 꾸란 구절을 금화에 새겨 넣은 것이다. 이슬람 세계에서 인물의 얼굴을 예술 작품이나 생활 용품에 묘사하여 사용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는 것은 이 전의 글을 통해서도 반복적으로 확인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꾸란 구절을 화폐에 새기고 유통함으로써, 압드 알-말릭은 자신의 권위와 신실함을 모두 표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후 이슬람 세계에서 제조된 동전들은 주로 꾸란 구절을 사용하거나 아랍어 캘리그래피 문양을 그려넣고, 그림과 같은 형태를 그려 넣더라도 왕의 얼굴이 아닌, 미흐랍과 같은 종교적 요소를 새겨 넣었다.

동전, 과거를 비추는 만화경

한 왕조가 왕조로써 권력을 갖추고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몇가지 척도가 존재한다. 언어를 통일하고, 문법서를 발간하며 법전을 정비한다. 더불어 경제를 안정 시킬 수 있는 화폐를 만들어 내는 것도 가장 중요한 성과 중 하나이다. 이슬람 세계가 발흥하고 1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이슬람의 사상이 집약된 화폐를 만들어 낸 압드 알-말릭은 언어 통일과 행정 체제의 정비, 도량형 반포 등 이슬람 세계 왕조의 첫 번째 전성기를 이끈 칼리프로써 광폭의 행보를 보이며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당대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작은 동전 하나에 새로운 종교 문화의 시작점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권력을 표출하고자 했던 칼리프의 적지않은 고민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Yi SOO Jeong is a lecturer of Korea Army Academy at Yeongcheon, She has MA in Anthropology and PhD in Middle Eastern & African Studies from the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She is specialized in Islamic studies and Islamic Ar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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