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포비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 – 제주도 예멘 난민 사태

2018년 6월, 이전에는 전혀 접해 본 적이 없던 문제로 우리 사회가 시끄러워졌다. 제주도에 무비자 사증을 통해 입국한 500여명의 예멘 난민이 사회 이슈의 중심에 섰다. 중동이나 유럽 땅에서나 벌어지던 갑론을박이 바로 우리 곁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예멘 난민 유입을 보도한 초기 언론의 논조는 부정적이었고, 이를 읽고 댓글을 남기기 시작한 여론도 너무나 낯선 종교와 문화를 가진 이방인에 대해 철저한 반감을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여론의 행방에 따라 언론은 다시금 자극적이고 방어적인 글을 쏟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확인되지 않은 루머와 그동안 인터넷을 떠돌던 이슬람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정보가 홍처럼 밀려들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반감을 갖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정, 이슬람은 인간이 갖고 있는 최악의 종교 중 하나인 것일까? 이번 난민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고, 바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이슬람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우리가 느끼는 거부감의 본질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이슬람은 7세기 현재의 아라비아반도를 중심으로 예언자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며 시작한 종교이다. 유다교, 기독교의 뒤를 이어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 등장한 유일신 사상으로 앞선 두 종교의 교리와 역사를 수용하고 이에 덧붙여 무함마드의 계시를 믿는다. 즉, 유다교의 여호와와 기독교의 하나님, 이슬람의 알라는 모두 같은 절대자이자 창조주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슬람의 관점에서 모세, 예수, 무함마드를 이 땅에 보낸 주체가 모두 알라인 것이다. 이들 세 종교를 일컬어 유일신 사상이라 한다. 더하여, 신자 수와 분포 지역의 광범위성 등을 토대로 기독교, 이슬람, 불교를 세계 3대 종교로 꼽는다. 이 중, 이슬람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신자수가 많은 종교이며, 신자 수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종교이기도 한다. 빠른 증가세는 이슬람을 모태 신앙으로 갖고 태어나는 신생아 수가 많기도 하고, 타 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개종자의 수가 가장 많은 종교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북아프리카, 사하라 이남지역, 중동,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퍼져있고, 유럽과 아메리카대륙 등 세계 곳곳으로 확장되고 있다.

또한, 이슬람을 믿는 신자를 지칭하여 무슬림이라 한다. 즉, 이슬람을 신앙으로 하는 예멘 난민은 모두 무슬림이라 볼 수 있다. 무슬림이 모여 종교 예배를 드리는 공간을 모스크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서울, 부산, 대구, 전주, 구미 등 다양한 지역에 다양한 형태의 모스크가 있다. 각 지역의 무슬림 커뮤니티의 규모에 따라 독립적인 건축에서 세를 얻어 꾸려나가는 작은 규모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성소를 구성하고 있다. 다른 종교에 비해 무슬림은 자신의 신앙을 외부로 표출한다. 일반적으로 무슬림 여성은 머리를 가리는 히잡을 착용하고, 모든 무슬림은 종교 의무에 따라 하루 다섯 번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해 예배를 드린다. 더불어 큰 소리로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을 외우기도 하고, 예배시간이 되면 스피커를 통해 방송을 하는 등 자신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요소들을 숨기지 않는다. 이런 모습에서 이슬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끼고 낯선 감정을 갖는다. 그러나 사람 사는 모든 곳이 그러하듯, 종교에 대한 신실함이나 실천의 정도는 이슬람 세계에서도 개인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렇듯 이슬람도 유대교, 기독교, 불교, 힌두교등 지구상의 사람들이 따르고 믿는 종교 중 하나임에도 왜 우리는 이슬람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부정적인 이미지, 혹은 더 나아가 공포에 가까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이슬람에 대한 공포심을 일컬어 “이슬람포비아”라고 한다.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에 영미권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단어로 알려져있다. 이슬람포비아가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퍼져나간 것은 2001년 9.11테러가 기점이었다. 비행기를 납치해 건물을 무너뜨리고 수천의 사망자를 낸 사건이 생중계 되며 전 세계인에게 충격과 공포를 심어주었다. 이 후, 미국이 주도한 대테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 수많은 분쟁과 전쟁이 이슬람 세계의 이미지를 대변하였다. 우리 사회도 ‘김선일씨 납치.사망사건’이나 ‘샘물교회 사건’등 주로 부정적인 이슈를 통해 이슬람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근래에 ISIS라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의 등장과 몰락과적에서 지역을 막론한 소프트 타겟(무기를 소유하지 않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테러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슬람은 곧, 폭력과 공포라는 공식이 만들어지고, 고착화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테러와 폭력을 사용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치 전면에 이슬람을 내세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우리가 구분해야 하는 것은 이슬람의 본질 자체가 테러와 폭력인 것인지, 아니면 특정 사람들에 의해서 이슬람이 자신들의 폭력적인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인가이다. 세계 어느 집단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공존한다. 한 국가를 예로 보면 크게 진보와 보수가 존재하고, 이 또한 흑백논리처럼 단순히 양분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정도에 따라 강경한 집단부터 중도, 혹은 유연한 집단까지 수없이 많은 생각과 입장이 있다. 이슬람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글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이슬람 세계는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각각의 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뿌리 내린 땅이 다르며, 갖고 있는 역사도 다르다. 그 중 일부 집단이 자신들의 생각을 테러나 폭력을 통해 관철시키고자 하는 극단주의적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이다.(특히 이들은 이집트에서 시작된 꾸뜨비즘과 이슬람 근본주의 중 하나인 와하비즘을 결합하여 자신들만의 극단주의 철학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들의 행동을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하거나 용서할 수 없다. 다만, 이들의 행동을 모든 무슬림, 모든 이슬람 세계의 모습으로 단일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제주도에 들어와 있는 예멘 난민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갖고 살아남기 위해 이 땅에 들어왔다. 어쩌면 그들 속에는 현재 쏟아지는 기사에 달리는 댓글처럼 정말 본인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위장 난민으로 들어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하는가? 비단 현재 예멘에서 들어온 난민 뿐 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앞으로 점점 더 외국인의 유입을 겪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인구 감소 문제나 노동력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외국인의 사회 유입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 민족끼리만 모여서 살아가는 단일 민족 문화는 이미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울타리 안에 수많은 배경과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번 예멘 난민과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논쟁이나 갈등은 향후 우리 사회가 겪어야 할 문제의 예고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 시스템 확충과 교육이다. 이미 독일과 같은 서구의 경우, 난민 사회화 과정이라는 체계를 통해 자국으로 유입되는 난민의 언어 교육부터 직업 교육에 이르기까지 사회 구성원으로 제 몫을 해 낼 수 있도록 체계적 관리와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마치 탈북민이 바로 남한 사회로 유입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기간 교육을 거친 후에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 것처럼 난민이라는 신분으로 우리 사회에 유입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과 교육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소위 위장 난민이나, 다른 악의적 목적으로 사회에 유입되려 하는 일부 사람들도 걸러낼 수 있고,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게 할 수 있다. 이는 정부, 학계, 군, 경, 민간, 기업 할 것 없이 모두가 함께 체계를 만들어 나가야한다. 확고한 체계를 통해서 사회로 유입된다면 낯선 이들에 대한 믿음도 한결 편하게[ 갖게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반드시 진행되어야 하는 과제는 교육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영.미.유럽권과 같은 서구권에 집중되었다. 종교와 관련된 교육도 기독교, 불교 등에 편향되었다. 일례로, 모세나 예수, 석가에 대한 위인전은 쉽게 찾아 볼 수 있어도 무함마드나 아랍권 인물에 대한 서적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즉 국제 지역에 대해 차별 없이 편향되지 않은 교육을 실시해야한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 사회의 면면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정세를 읽으며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무슬림도 우리와 똑같은 삶의 모습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와 같은 희로애락을 느끼며 한 인간으로서 그 가치를 다하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전쟁 없이 안정적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로, 우리의 삶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예멘 난민은 모두 잠재적 범죄자다’라는 명제를 정하고, 이들을 혐오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이슬람에 대한 혐오를 갖기보다 조금만 더 냉정하고 차분하게 그들의 상황을 들여다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이고,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방법 일 것이다.

Ahrum YOO is Arab in Seoul’s editor-in-chief. She has a MA in Politics and took a PhD course with reference to Middle East Politics from 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in London. She is specialised in Syrian, Iraqi and Lebanese affairs. Her academic interests are sectarianism, the role of political ideology and identity in contentiou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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