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혼돈과 분열의 뫼비우스의 띠

77510916 - soldier with machine gun with national flag of yemen

예멘의 한적한 시골길, 유적지를 거닐고 있는 한 영국인에게 나이든 에멘 남자가 다가와 넌지시 물어본다. “우린 지금부터 당신을 납치할거요. 정부가 한 달 째 수도공급 민원을 들어주지 않고 있거든. 우리에게 납치되어주면 당신을 손님으로 극진히 대접하겠소.” 황당한 제안, 그러나 3주후, 자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후덕해진 영국인은 이제 유창히 아랍어를 구사한다. 3주 내내 납치자 가족에게 후한 대접과 아랍어 교육을 제대로 받았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된다고? 필자의 지인이 직접 겪은 이야기다. 예멘 정부가 기초적인 서비스조차 제공하지 못하자 남부 지방에서는 자구책으로 외국인을 납치하여 협상력을 높이려는 시도가 빈번했다. 모카 커피의 원산지, 허리 중앙에 전통 칼을 차고 까뜨(Qatt, 환각작용을 가진 식물로 예멘, 에디오피아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기호식품)를 우물우물 씹으며 시간을 보내는 남자들, 한국과 같은 분단국으로 알려졌던 예멘이 어떤 연유로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 속으로 빠져든 걸까? 그 이유에는 분열로 점철된 국내정치, 부패로 찌든 정부와 경제난, 그리고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다.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교두보, 예멘

예멘은 주변 GCC국가들과 달리 자원 빈국이다. 그러나 예멘은 인도-태평양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수에즈 운하의 주요 항로에 위치해 있어 영국의 식민지가 되는 등 오랜 외부개입 역사를 겪어왔다. 아덴 (Aden)항이 있는 예멘 서남부는 지부티, 소말리아 등으로 둘러싼 아프리카의 뿔 (Horn of Africa)과 인접한 지역이다. 특히 지부티의 경우 작은 나라임에도 미해군 및 UAE군이 주둔하고 있다. 중국 또한 일대일로의 일환으로 지부티 자유무역지대 건설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어 지정학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홍해 입구인 바브알만다브(Bab al-Mandab) 해협에는 하루에 약 340만 배럴, 전 세계 석유물동량의 약 4%(2016년)가 유통된다. 또한 예멘은 소말리아와 동부 아프리카의 테러세력, 해적, 난민들이 걸프 반도에 진입하는 교두보다. 오랫동안 에리트레아, 에디오피아, 소말리아 등에서 매년 수천의 난민과 이민자들이 예멘에 밀입국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테러세력 유입 및 서남부 국경지역에 거주하는 쉬아파 후티반군을 경계하고 있다. 최근에는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로 미사일을 쏘아 교전을 벌어기도 했다.

예멘판 춘추전국시대: 지역, 종파, 부족 갈등

2011년 아랍의 봄이 전 아랍지역을 휩쓸자 예멘 시민들도 30년 넘게 독재를 휘두른 살레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약 10개월 뒤 걸프협력기구(GCC)의 중재로 살레의 안위 보장 대신 하야하는 조건으로 예멘은 평화적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하는 듯싶었다. 2012년 2월 대선에서 부통령이였던 하디(Hadi)가 임시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예멘 안정화를 위해 UN과 GCC를 중재자로 한 범국민대화협의회(National Democracy Council, NDC)가 2012년 3월 출범하여 예멘을 6개 지역으로 나눈 연방제 구성, 하디 대통령 임기 연장, 의회 의원 비율을 남, 북 출신 50:50으로, 자이드파의 본고장인 사다(Saa’da) 지역의 종교 자유 보장 및 무기반환 등을 골자로 한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러나 합의안에 반대한 자이드파가 NDC만료일인 2014년 1월 수도인 사나 정부를 공격하면서 합의안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2015년 이후 격화된 예멘 내전의 주요 행위자는 현 예멘 하디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군, 자이드파(Zaid) 후티 반군, 그리고 알까에다 아라비아지부(AQAP)이다. 국내 행위자 세 그룹 뒤에는 외부 지원 세력이 든든히 뒤를 지키고 있다. 하디 대통령 뒤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후티 반군 뒤에는 이란이 물적 지원을 보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후티 반군은 지역 부족과 연합하여 예멘의 북쪽 지역을, 하디 대통령 정부군은 서남부를, AQAP는 남부를 지배하고 있다. 세 커다란 세력 안에서 예멘 내 하쉬드(Hashid) 등 다양한 부족 연맹 또한 자신들의 생존과 이익에 따라 후티 반군, 정부군, AQAP에 협력하거나 대항하고 있다.

내전의 도화선, 후티 반군, 그들은 누구인가?

예멘 주민의 약 99%는 무슬림으로 35%는 쉬아파, 약 65%는 순니파 중 사피이 학파 교리를 따른다. 이슬람 순니파와 달리 쉬아파의 큰 특징은 사도 무함마드의 직계후손을 이맘(Imam)으로 따르며 신성시한다는 것이다. 후티 반군은 이슬람 쉬아파의 한 갈래로 4대 이맘의 첫째 아들인 바끼르(Baqir)를 다른 쉬아파가 5대 이맘으로 여기는 것과 달리 둘째 아들인 자이드(Zayd)를 5대 이맘으로 따른다. 자이드파로 불리는 이들은 정의롭지 못하고 부패한 지도자가 있을 시 제거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893년부터 사다(Sa’ada)를 중심으로 한 예멘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1962년까지 다양한 이름과 모습으로 그들만의 이맘왕국(Immamate)를 이어왔다. 1962년 공화국 출범 이후 북예멘에 귀속되었고 1990년 통일 이후 에도 사나(Sa’na) 중앙정부로부터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왔다고 주장한다. 또한 국경에 인접한 사우디 아라비아의 와하비즘(Wahabism)을 비판하며 예멘으로 영향을 경계해왔다.

자이드파와 순니파라는 종파대결구도 외에도 예멘은 남북이라는 지역갈등도 크다. 남, 북 예멘은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약 30년간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는 다른 체제아래 갈라져 있었다. 사회주의를 채택하여 상대적으로 남녀가 평등하던 남예멘과 달리 1990년 이후 통일되면서 북예멘의 이슬람색채가 짙은 헌법이 통과되자 이에 남부 지역 예멘인들의 불만 고조됐다. 남북 지역갈등은 석유가 발견되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예멘 주요 산유지의 70%가 남부에 속해 있으나 석유 및 가스로 나오는 수입을 모두 사나 중앙정부, 즉 살레 전 대통령의 가족 및 친족에게 돌아갔다. 특히 남부 지역 경제중심인 아덴항이 1990년대 들어와 쇠락하고 예멘의 모든 경제와 이권이 수도인 사나로 집중되자 이에 불만과 차별에 시달린 남부인들의 저항이 계속되었다. 추방된 전 부통령 알리 베이드(Ali Salim al-Beiddh)는 히즈볼라 지원 아래 레바논 베이루트에 거주하며 방송을 통해 예멘 남부분리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생존과 이익에 따른 부족들의 합종연횡

예멘 정치사회를 단 한 단어로 설명하려면 ‘부족(Tribe)’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부족’ 하나로 설명하기 예멘 사회는 다층적이고 복잡하다. 하지만 이웃국가인 이집트 등 타 아랍국가 보다 ‘부족주의’, ‘지역주의’ 색채가 매우 짙은 곳이다. 이에는 약 30년 간의 분단, 지리적 특성, 그리고 기본적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던 무능하고 부패했던 살레 정부의 실책이 크다. 예멘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부족 연맹은 하쉬드(Hashid), 바킬(Bakeel) 그리고 마드하즈(Madhaj)다.

하쉬드와 바킬은 예멘 북부 지역에 전통적으로 거주하던 부족으로 17세기부터 1962년까지 자이드파 이맘의 통치를 받았다. 이와 달리 마드하즈 부족은 남쪽과 중부 지역에 주로 거주하여 위의 두 부족과 다소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졌다. 하쉬드 가문은 수도 사나와 수도권 지역인 아므란(Amran)지역의 대표 부족으로 아흐마르(Al- Ahmar) 가문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왔다. 1990년대부터 살레 대통령과 연합, 예멘의 경제 및 정치 이권을 독차지하였으나 2011년 이후 살레에게 등을 돌리고 반군에 가담한다. 독자적 군을 보유하고 있던 아흐마르 가문과 마찬가지로 다른 부족 연맹 또한 자체 군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남부 지역 AQAP의 약진을 많은 전문가들이 지역 부족의 협력으로 해석하지만 예멘 전문가 Nadwa Al-Dawsari에 따르면 남부 부족들의 경우 AQAP의 급진사상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선별적으로 AQAP 혹은 반군에 협력하거나 저항한다. 모든 부족을 아우른 통합된 정부 및 지도자의 부재 아래 결국 예멘은 삼삼오오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실패한 정부, 실패한 경제

2014년 기준 예멘 GDP의 25%, 정부 재정수입의 65%가 석유 및 가스 수출에서 나왔다. 석유 및 가스에 대한 의존성이 높고 주변 산유국과 비교하여 매장량과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2014년 기준 세계식량기구(WFP)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 대부분이 생산성 낮은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나 오랜 가뭄과 투자부족으로 농업은 황폐해져 식량의 90%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이다. 서비스 및 산업, 무역 부분에는 인구의 약 1/4 만이 고용되어 있는 실정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인구의 약 54%가 빈곤선 아래에 놓여 있으며 실업률 또한 높다. 정부 부채도 심각해 예멘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약 16억 달러의 외부 지원이 필요한 현실이다.

2017년 UN 인간개발지수 187개국 중 168위를 차지한 예멘의 경제난은 부패한 정치로 더욱 악화되어왔다. 1990년 통일 이후 2011년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한 살레(Saleh) 전 대통령은 예멘 경제 및 군부의 모든 이권을 가족 및 친족으로 채웠다. 예멘의 주요 경제 수입인 석유의 70%가 생산되는 남부 마립(Marib), 샤브와(Shabwa), 무칼라(Mukalla)지역의 이권은 남예멘 지역주민이 아닌 살레와 주변인 주머니로 들어갔다. 1970년대부터 해외이주노동자로 나간 예멘인,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는 예멘인이 보내는 송금으로 예멘 경제는 겨우 유지되었으나 1990년 걸프전 및 내전 이후 그 송금마저 말라버렸다. 이에 2015년 9월 IMF는 예멘 정부에 연료보조금 삭감 등을 포함한 개혁안과 함께 3년 간의 5억7천만 달러의 구제금융안을 제안했으나 내전의 심화로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끊임없는 권력 싸움 속 고통받는 국민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7년 내전으로 보건 및 위생 시스템 마비되어 오십 만이 넘는 예멘인이 최악의 콜레라에 감염되었고 약 2 천여명이 사망했다. 현재 7백만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으며 80%이상의 예멘 주민들에게 긴급 인도적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전 세계의 관심을 받는 시리아 내전과 달리 예멘은 잊혀진 전쟁이 되고 있다. 하나의 세력으로 규합하지 못하고 분열된 예멘 정치인들과 부족 지도자들, AQAP와 사우디아라비아, UAE, 이란 등의 외부세력의 이권이 개입된 끝이 없는 내전의 굴레 속에 예멘 국민은 고향을 뒤로 하고 국경을 넘고 있다.

Ahrum YOO is Arab in Seoul’s editor-in-chief. She has a MA in Politics and took a PhD course with reference to Middle East Politics from 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in London. She is specialised in Syrian, Iraqi and Lebanese affairs. Her academic interests are sectarianism, the role of political ideology and identity in contentiou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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