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이슬람 세밀화 속에 스며든 문학, 여성, 그리고 사랑

파르도우시의 무덤, Mostafa Meraji

비젠과 마니제

이란의 역사와 전설을 시형(詩形)으로 집필한 대작 샤나메 속에도 수많은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그 중 ‘비젠과 마니제’의 이야기에서 마니제가 루스템의 도움을 받아 연인 비젠의 구출을 기다리는 대목 또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루스템은 구덩이에 갇힌 비젠을 구출하고 있으며, 메니제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의 연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 세밀화에 특징적인 부분은 메니제가 하얀 천으로 몸을 휘감은 채 등장한다는 것이다. 티무르 시대 세밀화들(그림 5, 그림 6)보다 100여년이 더 앞선 인주 시대의 메니제(그림 7) 역시 하얀 천으로 감싼 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등장하여 당시 무슬림 여성들의 의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시대가 지나며 티무르 시대의 세밀화 속 메니제에게는 머리 장식이 추가된 점도 흥미롭다. 다른 세밀화 속 여주인공들의 의상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의상에 모티프들이 추가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지만, 메니제만은 대개 깨끗한 순백의 흰 의상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 5-6, ‘비젠과 메니제’, 피르도우시의 샤나메, 15세기 (티무르 제국)
그림7, ‘비젠과 메니제’, 피르도우시의 샤나메, 14세기 (인주 왕조)

이슬람 세밀화 문학 주제 속의 여성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니자미의 『함세』와 『샤나메』의 여주인공들이 가장 대표적으로 등장하였다. 그녀들의 의복이나 머리 장식은 각 이슬람 왕조에서 사용했던 악세서리들을 추가하기도 하여 도상학적으로 시대와 국가를 구분짓게 하는 특징들을 갖기도 했다. 또한 세밀화 속 여성들은 이슬람 세계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상징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술탄 산자르와 노파’를 주제로 한 세밀화 속 노파는 늙거나 추한 여성을 자주 등장시키지 않았던 이슬람 세밀화 속에서 독특하고 흥미로운 인물로 남아 있다.(그림 8) 이 세밀화에서 노파는 술탄 산자르에게 자신의 소들이 도둑맞은 정황과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줄레이하와 유스프

그림8, 술탄 산자르와 늙은 여성, 니자미의 함세,
14세기 초반 (잘라이르 왕조)

이슬람 세밀화의 거장인 비흐자드의 ‘줄레이하로부터 도망치는 유수프’는 자칫 추한 여성을 나타내는 듯 하지만 알고보면 여성 인물에 대한 숨은 해석을 갖추고 있는 걸작이다.

기하학적인 건축 모티프들과 각 방들에 다르게 그려진 문양들로 이슬람 건축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유명한 이 세밀화에서 주인공들은 건물의 상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아름다운 청년 유수프에게 욕정을 품은 줄레이하는 방들을 색정적으로 꾸미고 유수프를 유혹한다. 줄레이하는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고 달아나는 유수프를 잡으려 애를 쓰고 있지만 끝내 달아난 유수프를 보며 큰 상심에 빠진다.

이후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휩싸인 줄레이하는 급속도로 늙고 추하게 변하지만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여 유수프와 신께 용서를 받아 아름다움을 되찾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줄레이하는 세밀화 속에서 추한 여성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그녀가 유수프에게 품은 욕망은 이슬람에서 신을 향한 연모(戀慕)로 연결되기도 한다. 즉, 그녀는 문학 속 여성임과 동시에 알라를 향한 이슬람의 종교적 영혼을 나타내는 표상(表象)이다.

이슬람 세밀화 속 여성들은 때로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때로는 술탄의 조력자로서 지혜를 주는 역할로, 또 독특한 상징과 신을 향한 진정한 모습을 갖춘 인물로 나타나며 1000년간의 시간 동안 이슬람 회화를 더욱 아름답게 꾸미는 역할을 하였다.

터키 미마르시난 국립 예술 대학교에서 '아시아 터키 지역의 세밀화 속 여성상'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주요 연구분야로 이슬람의 세밀화와 비잔틴 제국의 이콘 등 종교 회화인 성화(聖畫)를 다루고 있습니다. 현재 국립중앙과학관에서 문화재복원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

*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