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시리아: 너와 나의 연결고리

저자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체류할 당시 시리아 친구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 왜 우리가 남한이랑 외교관계를 안 맺는지 알아?”

“왜?”

“하피즈 (현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가 죽을 때 바샤르의 손을 꼭 잡으며 그랬데. 난 김일성과 친구니 절대 남한과 수교를 맺지 말아라.”

하피즈 아사드 유언의 진위여부는 명확치 않다. 그저 친구의 농담 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리아는 수교를 맺지 않은 남한과 달리 북한과는 1966년 수교를 맺어 현재까지 두터운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다마스커스 대학에서 아랍어 공부를 하는 남한 학생들은 북한 학생들이 기숙사에 있다는 이유로 대학기숙사에 거주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큰 문제가 없었던 건 당시 시리아에 거주하는 남한 사람이 매우 적었고 대다수 나같이 아랍어를 공부하러 온 단기 연수생들 이였기 때문이다.

 시리아와 북한, 하비비와 동무의 밀월

김일성과 하피즈의 사진(출처 : nkeconwatch.com)

다마스커스 근교에 있는 전쟁박물관(The October War Panorama Museum)에 가면 다정히 손을 잡은 하피즈 아사드와 김일성의 사진이 있다. 1967년 전쟁을 기념해 만든 이 박물관은 북한의 지원으로 지어졌다. 같은 부자세습 정권으로 아사드 가문과 김씨 정권은 개인적인 친분도 막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6월 하피즈 아사드가 사망하자 북한은 김일철 인민무력상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 대표단을 시리아로 파견하고 애도기간을 정했다. 이후 하피즈 아사드의 차남인 바샤르가 정권을 계승하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바샤르에게 직접 조전을 전달하기도 했다.

북한과 시리아는 1966년 대사급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1969년 평양에 시리아 대사관이 설치된 반면 남한과 시리아는 아직 미수교국이다. 북한과 시리아의 연결고리는 세습독재정권,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 군사 및 기술 교류다. 김일성에게 시리아는 ‘혈맹’국가로 공산주의운동전파의 중동 전초 기지였다면, 김정일과 김정은에게 시리아는 전략무기수출 및 기술교류를 위한 짭짤한 외화벌이 시장이다.

북한과 시리아는 일당독재체제 국가다. 북한은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바스당(The Ba’th Party)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반(反)미노선에 대한 지지를 지속해왔다.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에도 2012년 11월 김정은은 성명문을 통해 1970년 시리아 바스당 쿠테타를 ‘시리아 주권 회복과 번영의 시작’이라 치켜세웠다. 이후에도 북한은 시리아 내전에 따른 국가 경제 파탄과 난민발생에도 불구하고 아사드 정권의 공고함을 찬양했다. 2015년 ISIS가 다마스커스를 공격하는 가운데 조선노동당 창당 70주년 기념으로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 한 가운데 ‘김일성 공원’이 세워지기도 했다.

김일성 공원 기념행사의 모습 (출처 : sana 시리아 관영통신사)

북한과 시리아는 깊은 군사교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북한은 시리아에 25명의 공군조종사를 비롯 1973년까지 정비사를 포함한 약 1,500명의 군 병력을 지원했다. 1980년대 시리아의 레바논 내전 개입에도 군 병력을 보내 지원했다. 북한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시리아에 소총, 박격포, 탄약 등 재래식 무기를 수출했다. 특히 1982년 하피즈 아사드가 시리아 중부 하마(Hama)시에서 일어난 시민 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할 때 사용된 무기 중에도 북한에서 수입된 제품이 다수 포함되었다.

시리아는 북한 탄도미사일 수출의 주요 대상국이기도 하다. 1991년 북한은 시리아에 스커드 미사일 24기를 공급한 이래 매년 스커드 미사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은 대량살상무기 생산 기술을 시리아에 수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 이후 바샤르 아사드 정권에 전투병 및 기술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 2월, 유엔은 2012년에서 2017년 사이 북한이 시리아에 탄도미사일 기술과 40척의 화학무기관련 물질을 시리아에 전달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쌍둥이 국가, 시리아와 북한

경제 또한 고립주의를 선택, 하피즈 아사드 통치 하 미국 제품을 찾기 힘든 시리아 였다. 미국 제품에 익숙한 저자에게 2004년 시리아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KFC는 ‘Kentucky Fried Chicken’이 아닌 ‘Kuwait Fried chicken’으로, 코카콜라나 펩시 대신 캐나다 산 콜라를 마셨다. 국가의 주요 산업은 정부에 예속되었으며 아사드 가문이 속한 알라위파(Allawitte)와 군의 연합체인 소위 ‘알라위-군 엘리트 집단’이 주요 경제권을 쥐었다.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기름, 빵, 설탕 등에 막대한 국가보조금이 들어가 상대적으로 서민 물가는 저렴한 대표적 사회주의 경제체제였다.

사회주의 국가답게 집단감시체제로 시내 어느 곳에나 비밀경찰이 있었다. 하피즈 정권시절 시민 3명 이상이 모이지 못하도록 감시체제를 강화했다. 이후 언론 및 상인단체, 종교단체 등은 정부의 감시를 받거나 집권세력에 적극 협력했다. 각 관공서, 상점엔 하피즈 아사드의 사진이 걸려져 있었고 하피즈 아사드를 중세 아랍의 명장 살라딘과 동격화 하며 시리아 시내 곳곳 하피즈의 동상을 세웠다. 지도자의 신격화, 집단감시체제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그림이다.

2000년 하피즈 아사드가 사망했다. 차남 바샤르 아사드 집권 이후 미국 및 서방의 다양한 상품이 시리아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경제도 제한적으로나마 조금씩 개방되었다. 2000년 집권한 영국에서 공부한 안과의사 출신인 바샤르는 야심 차게 개방경제 및 주식시장 도입을 시도했으나 기존 집권세력의 발발과 미미한 효과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실패한 개혁의 대가는 혹독했다. 시장개방과 함께 풀린 언론의 자유는 다시 정부의 감시하에 통제되었고 잠시 개방되었던 시민사회는 다시 하피즈 시절 감시 체제로 돌아섰다. 저자가 다마스커스에서 유학하던 2008년에도 한 시리아 지인은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다른 이야기는 다 괜찮아, 다만 두 가지 단어만 입에 올리지마. 이스라엘과 바샤르 아사드.” 이후 나에게 바샤르 아사드는 ‘철수’, 이스라엘은 ‘그 거시기, 그 나라’라는 예명으로 불렸다.

독재자의 핸드북, 북한 그리고 시리아

 북한은 독재 정권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국가다. 특히 독재 정권의 경우 북한의 체제공고화 및 유지 노하우에 러브콜을 보낸다. 지난 30년 간 북한은 짐바브웨 무가베의 정적인 은코모의 반체제 운동 진압 등에 북한군을 보내 사하라 이남 국가들의 내전에서 활약했다. 바샤르 아사드도 북한의 노하우를 배운 것일까?

2019년, 새로운 독재정권이 생존의 신호탄을 쏘았다. 바샤르 아사드의 시리아, 기나긴 8년간의 내전이 흐지부지 되고 미국이 발을 빼는 가운데 잠정적으로 바샤르 아사드의 승리로 결론에 다다르고 있다. 수단 오마르 바시르 대통령의 시리아 방문은 시작으로 UAE, 바레인이 다마스커스에 다시 대사관을 열었고 몇 년 전 바샤르 아사드를 내쳤던 아랍 연맹은 시리아의 복귀를 환영하고 있다. 그야말로 예상치 못한 금의환향이다.

북한의 김정은 또한 비핵화 협상을 통해 미국과 남한, 국제 사회에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세습 독재 2세대와 3세대로 바샤르 아사드, 김정은 모두 ‘젊고 새로운 지도자’라는 이미지 구축과 체제 유지에 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에서 발생한 수많은 난민, 자국민에게 화학무기 사용, 인권 문제 등 두 젊은 지도자 모두 승리의 가면 뒤 냉혹한 독재자의 모습을 감추고 있다.

지난 12월 북한 외무성의 리용호가 시리아를 방문, 바샤르 아사드를 예방하며 북한과 시리아 관계의 단단함을 표명했다. 한반도 비핵화 협상 및 탄도미사일 문제가 뜨거워지는 가운데 향후 북한과 시리아의 연결고리가 더 단단해 질지, 아니면 다시 격변의 파도를 탈지 귀추가 주목된다.

Ahrum YOO is Arab in Seoul’s editor-in-chief. She has a MA in Politics and took a PhD course with reference to Middle East Politics from 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in London. She is specialised in Syrian, Iraqi and Lebanese affairs. Her academic interests are sectarianism, the role of political ideology and identity in contentious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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